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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장의 비밀

속도를 다투는 스포츠에서 기록 단축을 위한 노력은 엄청나다. 육상에서 마찰을 줄이는 스파이크 러닝화, 수영에서 물의 저항을 감소시키는 반신 수영복 등 각종 첨단 장비가 ‘0.1초’를 앞당기기 위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말들이 달리는 경마장도 마찬가지다. 얼핏 보면 평평한 모랫바닥 같지만, 거기엔 정밀한 스포츠 과학이 숨어 있다.

경주로는 일반인들의 접근이 차단된다. 그래서 자세히 살필 수 없다. 외부에서 볼 때는 그냥 하얀 모래밭처럼 보인다. 속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경주로의 단면은 두께가 60㎝에 달한다.

경주로의 밑바닥에 지름 4∼10㎝ 사이의 굵은 돌을 33㎝ 높이로 깔고 그 위에 4㎝ 이하의 작은 돌을 10㎝ 높이로 쌓는다. 그다음 화강풍화토를 10㎝ 두께로 올린 후 마지막으로 굵은 모래를 7㎝ 정도 덮는다. 이는 배수와 안전 때문이다. 4단계로 조성된 바닥면은 웬만한 폭우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또 충격을 완화해 시속 60㎞를 넘나드는 속도로 질주하는 경주마들의 안전을 지켜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경주로의 높낮이다. 평평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맨눈으로 구별이 어려울 뿐이다. 렛츠런파크 서울의 경우는 높낮이가 심한 편이다.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차이는 4m이다. 웬만한 성인 2명의 키를 훨씬 넘는다. 결승선과 450m 떨어진 맨 마지막 코너가 가장 낮다. 반대로 가장 높은 곳은 출발선과 결승선이다.

전체 코스로 볼 때 말들이 출발선부터 서서히 내리막을 달리다가 마지막 코너를 돌아 결승선까지는 다시 오르막을 질주하는 구조다.

결승선까지 오르막 경사가 있기에 경주마들은 경주 막판 마치 언덕길을 달리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말의 안전을 확보하고 동시에 경주의 박진감을 더하기 위해서다. 경주 막판이 내리막이거나 평지일 경우 가속도에 따른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아이들이 내리막에서 뛰어가다가 발이 엉켜 고꾸라지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반면 오르막에서 뛰면 상대적으로 더 힘들기에 지구력이 강한 말들이 순위를 역전하는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다. 경주마들의 막판 스퍼트 대결이 더욱 박진감 있는 이유다.

경주로는 코스의 고저 차뿐만 아니라 노면 자체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일정하게 기울어져 있다. 렛츠런파크 서울의 직선 구간은 가운데 지점이 약간 높고 양쪽이 낮은 형태다. 곡선 구간에서는 안쪽이 낮고 바깥쪽이 높다. 원심력이 작용하는 코너에서 원심력을 상쇄해 말들이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자동차 도로의 원리와 같다.

경주로는 1.5∼2.5%의 기울기를 갖고 있으며 트랙터와 모래 두께 조절기라는 특수 장비를 이용해 일정한 높이를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전 세계 모든 경주로가 렛츠런파크 서울 같은 고저 차를 도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체 기준에 따라 경주로를 독립적으로 설계한다. 실제로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은 출발선에서 결승선까지 꾸준한 오르막으로 조성돼 있다. 고저 차는 1m 내외다. 경주로에서 말이 뛰는 방향도 저마다 다르다. 일본, 홍콩, 영국, 호주에는 시계방향과 반시계방향 주행이 섞여 있으나 한국과 미국은 반시계방향으로만 돌게 돼 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도움말=한국마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