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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출판문화협회 자료를 보면 지난해 나온 책은 4만7589종. 하루에 평균 130권이 나옵니다. 이 130권 중에서 독자의 선택을 받는 책은 몇 권이나 될까요. 그중에서 시간을 견뎌 오랫동안 사랑받는 책은 또 얼마나 될까요. 책에게도 시간은 가혹하니 화려한 베스트셀러보다 스테디셀러가 되기 어렵고, 스테디셀러에서 시대의 고전으로 승격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니 한 사회가 고전을 몇 권 갖고 있느냐는 그 시대의 문화적 품격을 드러내는 상징적 수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주 20년을 풍성하게 한 두 권의 고전이 재출간됐습니다.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학고재)가 하드커버로 재출간됐고, 이유미 국립수목원 원장의 ‘우리 나무 백가지’(현암사) 개정증보판이 나왔습니다. 한국미의 본질을 아름답게 들려주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는 1994년 출간 한 달 만에 5쇄를 찍을 정도로 돌풍을 일으킨 뒤 지금까지 50쇄, 50만 부가 팔렸고, 우리 나무 안내서인 ‘우리나무 백가지’는 1995년 출간돼 26쇄를 찍었습니다. 무엇보다 두 권은 각 분야의 뿌리 같은 책입니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가 주목받은 뒤 우리 문화에 대한 인문 교양서들이 잇따랐고, 나무에 대해서라면 일본과 서양 도감만 있던 시절 ‘우리 나무 백 가지’는 우리 나무·풀에 대한 다양한 책 출간을 이끌어냈습니다. 책 한 권이 만들어낸 문화적 확산성을 증명한 것이죠.

2005년 개정판에 이어 10년 만에 나온 개정 증보판 ‘우리 나무 백가지’는 새롭게 밝혀진 사실을 추가하고, 달라진 학술적 분류를 바로잡고, 환경 변화에 따라 달라진 나무의 생태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저자는 당초 전면 수정을 고민했지만 책이 가진 자신만의 색깔을 간직하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해 섣부른 수정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자도 어찌할 수 없는 책만의 생명인 듯합니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는 내용상의 큰 변화 없이 판형만 바꿔 ‘학고재 클래식’ 1권으로 나왔습니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어 있다.(중략)나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261쪽) 우리 문화에 대한 안목과 정 깊은 감식안, 유려한 문장은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생생합니다. 학고재는 하드커버로 낸 이유에 대해 “고전을 세월의 훼손 없이 오래도록 간직하기를 바란다”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책을 세월로부터 지켜주는 것은 하드커버가 아니라 하드커버를 닳고 닳게 만드는 독자들의 손입니다. 그 손이 고전을 만듭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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