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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청, 계약사 능력검증 때
허위서류 알고도 계약 체결

시험성적서 없는 항법장치
호위함 장착 후 3년뒤 요구
뒤늦게 받은 것조차 엉터리

신품 계약하고 중고 받고도
교환 조치만 하고 제재없어

방위사업청의 전력증강 사업이 곳곳에서 허점투성이인 것으로 감사원 결과 드러났다.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데다 성격상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방위사업이 지뢰밭을 걷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방사청은 ‘바다의 지뢰’인 기뢰제거용 소해함(MSH-Ⅱ) 장비를 외국 군수업체들로부터 납품받는 과정에서 무료로 받을 수도 있는 단순 책자를 포함해 약 1억8000만 원 상당의 자료에 대해 무려 약 240억 원을 지급했다가 적발됐다. 계약과 사후관리의 엉망 실태는 요지경 같다. 성능 검수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중고품을 받아도 제재조차 하지 않으면서 부실한 장비가 납품됐다. 전력 공백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스스로 ‘바가지 쓴’ 황당한 방사청 = 감사원이 29일 발표한 ‘해군전력 증강사업 추진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방사청은 지난 2010년 미국의 A사와 5490만 달러 상당의 가변심도음파탐지기를, 지난 2011년 미국의 B사와 복합식 소해장비(4490만 달러)·기계식 소해장비(2538만 달러)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복합식 소해장비는 음향이나 자기장을 이용해 기뢰를 제거하는 장비고, 기계식 소해장비는 줄을 끊어 기뢰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 뒤 제거하는 장비다.

그런데 이 장비들과 별도로 무료인 복합식소해장비 기술자료 묶음을 포함해 단순 기술자료, 도면에 대해 15만6000달러(약 1억8000만 원)를 지급하기로 계약을 체결하고 실제로는 무려 2128만 달러(약 240억 원)를 지급했다. 계약가를 고려하지 않고 국방중기계획에 편성된 예산을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조차도 제대로 된 자료를 받지 못했다. 예를 들어 기계식 소해장비의 도면 묶음의 경우 초안 수준의 도면만을 일부 받고 부대정비교범 3권 중에서도 1권만을 인도받았으며, ‘군 운용적합성분야 시험성적서 및 공장수락시험 결과서’는 받지 못했다.

방사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소해함에 탑재되는 물품의 실제 계약가격과 상관없이 방사청이 국방중기계획에 편성된 예산을 기준으로 그대로 지급한 데다 최종 납품 장비가 부실장비로 드러나 계약이 해지되는 바람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부실장비 확인 안 해 전력공백 = 방사청은 장비 납품 시 성능에 대해 철저히 확인할 의무가 있다.

특히 외국 업체와 거래할 경우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계약상대방이 해당 제품을 납품할 능력이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제작자증명서를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B사는 실제로 제조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음에도 제작자인 것처럼 허위서류를 제출했고, 방사청은 허위임을 인지했음에도 해당 서류를 그대로 인정해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장비제작능력이 없는 B사는 계약 내용과 달리 다른 하청 업체들에서 제작한 장비를 납품했다. 이 중 소해 케이블의 경우 제조사와 제작국마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지난 3월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이 업체에서 납품받은 품목들의 성능기준을 검증한 결과 기계식 소해 장비의 주요 구성품인 윈치 소음 수준이 기준에 미달하는 등 여러 장비의 성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A 사가 납품한 가변심도음탐기 역시 전투용 부적합 판정을 받은 성능 미달 제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과정에서 방사청은 납품 검사도 하지 않고 대금을 지급하거나 수차례 미국 출장을 다녀오면서도 제작 현장도 방문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술항공항법장비 엉터리 성적서도 인정 = 전시에 상륙돌격 병력을 수송하는 상륙함(LST) 장비 납품 과정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드러났다. 해군은 노후화된 상륙함을 대체하기 위해 지난 2008년부터 수조 원을 투입해 성능이 향상된 차기 상륙함을 확보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차기 상륙함 탑재능력 설계 △결함 후속조치 △탐색레이더 사업추진 과정이 부적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지난 2009년, 2010년, 2014년에 걸쳐 방사청은 미국의 C사와 국외구매 계약을 체결해 차기 상륙함과 차기 호위함용 전술항공항법장비(TACAN)를 납품받았다.

TACAN은 함정의 방위, 거리 등 정보를 항공기에 제공하는 장비다. 이 장비는 진동과 충격에 강한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C사가 차기 호위함용 TACAN에 대한 시험성적서를 제출하지 않았는데도, 그냥 장비를 납품받아 차기 호위함에 장착했고 길게는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시험성적서를 요구했다. 이렇게 뒤늦게 받은 성적서조차 해당 장비와 다른 제품을 시험한 결과를 표기하고, 시험평가기관도 명확하지 않은 ‘엉터리 성적서’였는데도 이를 그대로 인정했다.

감사원은 또 방사청이 국내 업체로부터 해군의 전방함대 주력 전투함인 유도탄고속함의 디젤엔진을 납품받으면서 비정상적인 진동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방사청은 새 제품을 납품하기로 계약해놓고 중고품을 납품한 업체들에 대해서도 교환 등의 조치만 하고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D사의 경우 3만5474달러 상당의 새 제품 계약을 체결한 후 해군에 모두 중고장비를 납품했다. 이렇게 30개 업체가 143만 달러 상당의 계약에서 중고장비를 납품했다.

유현진·정충신 기자 cworang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