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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한국의 메달 효자종목으로 부상한 펜싱은 칼을 사용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스포츠다. 특히 찌르기 공격이 주가 되는 에페(전신)나 플뢰레(상체)에선 부상 위험이 크다. 얼굴은 마스크로 보호하고 있으나 실제로 눈 부상이 잦다. 1982년엔 경기 도중 구소련 선수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부러진 칼날이 선수의 마스크를 뚫고 들어가 불의의 사고로 이어졌다.

선수의 부상을 방지하고 또 보호하기 위해 펜싱복과 마스크 등 장비는 첨단과학을 통해 계속 발전해왔다. 펜싱복의 소재는 특별하다.

국제펜싱연맹(FIE)은 반드시 합성섬유인 ‘케블라’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케블라는 가볍고 튼튼해 방탄조끼나 군용 헬멧에 사용되는 기능성 소재다. 펜싱복의 바깥과 안쪽 재킷을 구성한다. 합쳐서 약 163㎏의 저항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됐다. 이 정도면 칼이 구부러질 정도여서 찔려도 다치지 않는다.

또 펜싱복 안에는 전기선이 고르게 분포돼 있다. 육안으로는 분간할 수 없는 빠른 공격 속도를 감지해 성공 여부를 명확하게 판정하기 위해서다. 선수가 상대의 유효한 부분을 찌르거나 베면 바로 압력센서가 반응한다. 선수들의 유니폼 뒤에 달린 긴 전선은 전광판과 연결돼 있으며, 압력센서가 외부의 자극을 전기신호로 바꿔 전광판에 불이 들어오게 한다. 펜싱 선수들이 칼을 휘두르는 속도는 초속 7m에 이른다. 2.5m 안팎인 일반인들보다 3배 가까이 빠르기에 이런 판정장비는 필수적이다.

머리를 보호하는 마스크는 스테인리스 강철로 만든다. 그물코의 짜임새는 구멍 뚫기 테스트에서 허용되는 힘의 2배 이상을 견딜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펜싱 칼은 마레이징 강철을 사용한다. 마레이징은 제트 전투기를 만들 때 쓰는 합금강철이다. 탄소강철보다 견고하고 잘 부러지지 않는다. 찌르기 공격만 하는 에페와 플뢰레는 칼끝이 적당한 힘 이상으로 눌리면 구부러지게 돼 있다. 구부러진 칼끝이 칼의 몸체와 접촉하면 점수에 반영된다. 찌르고 베는 사브르는 칼 몸통에 전기선이 내장돼 있다. 상대 유니폼에 닿을 때마다 반응한다.

펜싱복이 튼튼하고 과학적인 대신 단점이 하나 있다. 한증막 같은 더위를 각오해야 한다. 선수들은 한여름 훈련 때 땀과의 전쟁을 벌인다. 30도가 넘는 기온 속에서 방탄 소재의 펜싱복을 입으면 금세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는다. 여름철 태릉선수촌 펜싱 훈련장에서는 수시로 신발에 고인 땀을 빼내는 선수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펜싱복 외에 훈련 보조수단으로 ‘펜싱용 더미(인형)’가 개발된 적도 있다. 한국스포츠개발원은 2012년 자체 과제로 대표팀 선수들이 훈련할 때 가상의 상대로 쓸 수 있는 인형을 개발했다. 그러나 인형이라고 해서 그냥 서 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인형 안에는 압력센서가 내장됐다. 선수들의 찌르기 공격 등을 잡아내 반응속도를 측정할 수 있도록 했다. 주로 에페나 플뢰레용이었다. 개발원은 최근엔 사브르용 더미를 개발 중이다. 빠르면 내년 5월쯤 선보일 예정이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도움말=길세기 한국스포츠개발원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