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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스페셜 ‘용팔이’는 ‘용한 돌팔이’ 외과의사의 종횡무진 활약과 재벌가의 후계자 구도를 둘러싼 갈등을 다룬 드라마다. 고액의 돈만 받을 수 있다면 환자가 누구인지 묻지 않고 장소가 어디이건 상관없이 달려가 치료하는 레지던트 3년 차 김태현(주원)이 몇 년째 코마 상태로 VVIP 병동에 잠들어 있는 재벌그룹의 상속녀 한여진(김태희)을 깨우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한여진이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보안이 철저한 병실에 갇혀 관리되는 동안 조직폭력배들의 칼부림이 난무하는 현장으로 불법 왕진을 가서 응급 수술하면서 받은 돈으로 사채를 갚아나가는 김태현의 눈물겨운 생존기가 도입부에 배치되면서 시청자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김태현은 사채 때문에 불법 왕진을 다니며 이중생활을 하는 인물이다. 조직폭력배들 사이에서는 ‘용한 돌팔이’라는 의미의 ‘용팔이’로 불리면서 병원에 가면 죽을 수 있어도 용팔이에게 가면 죽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돈벌레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돈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그의 행동은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을 살리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여동생의 간 이식 수술비 마련 때문에 진 사채와 이자를 갚아야 하는 것은 물론, 여전히 투병 중인 여동생을 살릴 수 있는 거액을 모아야 하는 절박감이 그를 ‘용한 돌팔이’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용팔이를 검거하기 위해 혈안이 된 경찰의 추적 끝에 김태현은 신분이 탄로 날 위기에 직면한다. VVIP 병동으로 분류되어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한신병원 12층을 담당하는 이과장(정웅인)은 경찰 수사에 응하다가 평소 안하무인으로 시건방지게 행동하던 김태현이 용팔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그를 협박한다. 이과장의 협박성 회유에 넘어간 김태현은 12층의 VVIP 병동으로 자리를 옮겨 코마 상태의 한여진을 담당하면서 그녀의 오빠이자 한신그룹 회장 한도준(조현재)의 음모에 휘말린다.

한신그룹 후계 구도에서 2인자인 한도준은 배다른 여동생을 깨우지 않고 수술 도중 죽게 만드는 음모를 꾸민다. 비록 몸은 마비 상태이지만 오랜 시간 같은 약에 의해 잠들었던 탓에 약에 내성이 생기면서 의식이 돌아온 한여진은 자신을 향하는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 때문에 궁지에 몰린 김태현을 매수한다. 한여진과 김태현의 거래는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를 이용해 발송한 20억 원 상당의 무기명 양도성 예금증서를 주고받으면서 성사된다.

거래로 시작한 김태현과 한여진의 관계에 로맨스가 싹트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이들의 로맨스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VVIP 병동으로 분류된 한신병원 12층에서는 ‘환자’가 아닌 ‘고객’을 특별 관리한다. 의료민영화가 시행된다면 언제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풍경들이 펼쳐진다.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에 따라 경영되는 곳에서 보편적 의료 복지는 다른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용팔이’의 불법 왕진이나, VVIP 병동의 고객 특별 관리는 모양새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 오히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적어도 상당히 특별한 세계인 12층 VVIP 병동의 고객들을 경험한 용팔이 김태현에게는 그렇다. 진짜임에도 가짜 행세를 하다가 꼬리를 밟힌 용팔이나 ‘환자’가 아닌 ‘고객’을 상대하는 김태현은 다른 인물이 아니다. 이상한 나라의 용한 돌팔이 김태현을 통해 VVIP 병동의 그들과 일반 병동의 우리가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