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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규 / 서울대 교수·경영학

시행 100일 정도가 지난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벌써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란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탄소배출권을 할당받은 국내 524개사가 기업별로 지정한 양보다 이산화탄소(CO2)를 적게 배출한 기업은 남는 배출권을 팔고, 허용량보다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기업은 초과한 만큼 배출권을 사들이는 제도다. 예를 들어 2000t을 할당받은 기업이 2200t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면 200t의 배출권을 사야 하고, 1500t을 배출했다면 남은 500t을 배출권 거래소에서 팔 수 있다.

우리나라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1인당 배출량 기준으로는 전 세계 20위지만, 연료 연소에 의한 CO2 배출량 기준으로는 전 세계 7위이고, 특히 1990년부터 2010년까지 연평균 배출량 증가율은 3.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이기 때문이다.

이명박정부 때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정 지침으로 삼고, 국제사회에 대해 우리나라의 탄소배출량을 2020년까지 배출 전망치 대비 30% 가까이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배경 아래 2012년 5월 여야의 지지로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원래 배출권 거래제는 2013년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기업들의 반발로 한 차례 연기돼 지난 1월부터 시행됐다.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규제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2005년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한 유럽연합(EU)은 저탄소 관련 산업에 관한 기술 특허가 2배 이상 증가했고, 이런 기술력을 기반으로 전 세계 저탄소 시장의 33%를 차지한다. 그뿐 아니라, 배출량을 줄이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남는 배출권을 팔아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추가적인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입법 및 규제의 취지가 좋은 제도라 할지라도, 한국 기업의 본원적인 경쟁력을 떨어뜨려선 안 된다. 지난 1월 12일 개장한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에서 지난 3개월 동안 실제 거래가 이뤄진 것은 3건에 불과하고, 초기 할당량 대비 100만분의 1 정도의 실적에 그쳤다. 정부의 욕심과는 달리 배출권 거래 시장은 아직 걸음마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배출권 거래제가 초래하는 부작용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다. 제도 시행 이후 불과 4개월 만에 비철금속 업종의 17개사는 할당권이 부족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인접한 중국에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철강 및 석유화학 업계도 다급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배출권 거래제를 적용받는 주한 외국계 기업들은 배출권 거래제로 인해 생산물량을 중국으로 이전했거나 증설 및 신규 설비 투자를 보류 중이다. 심지어 특정 외국 기업의 경우 2015년 생산가동 일수를 근 1개월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더 심각한 것은, 정부 내에서조차 2030년 온실가스 배출 감축치를 두고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가 팽팽한 기싸움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기업들은 통상임금, 법인세 인상 논의, 장기간 지속된 내수침체 및 불경기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여건이다. 정부가 기업의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라는 목표만을 추구하면 할수록 제도의 부작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 배출권 거래제를 통해 온실가스를 줄임과 동시에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더 키울 수 있는 창의적 사고가 매우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