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연구원들이 암 치료에 쓸 수 있는 고에너지 양성자 빔을 발생시키는 고출력 레이저 증폭단을 구축하고 있다. ETRI 제공

전전자교환기(TDX),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4M DRAM, 한·영 자동번역, 스마트 선박, 3차원(3D) 가상체험….국내 최고의 싱크탱크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일궈낸 다양한 업적들이다. 한국이 이동통신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처럼 ETRI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올해로 창립 39주년을 맞은 ETRI가 기술력과 창업을 바탕으로 창조경제의 핵심 전진기지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어 주목된다.

24일 ETRI에 따르면 소프트웨어(SW), 콘텐츠기술, 방송통신미디어, 통신인터넷, 정보통신부품소재, 융합기술 등 정보통신기술(ICT) 전 분야에서 ETRI의 기술력이 전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성과를 쏟아내고 있다.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하이패스(hi-pass), 대용량 저장장치인 웹하드(Webhard), 1700만 관객 동원의 신화를 일군 영화 ‘명량’의 컴퓨터그래픽(CG, 연구소기업 매크로그래프 작품), 차량용 블랙박스, 영화관의 4차원(4D), 통신해양기상위성인 천리안의 탑재체 등도 ETRI의 작품이다. ETRI는 이렇게 개발에 성공한 기술들을 일반기업체나 중소기업에 이전해줘 경제발전의 밑거름 역할을 해냈다. 기술이라는 나무를 잘 키워서 기업들로 하여금 맛있는 과일을 딸 수 있게 도와준 셈이다.

ETRI는 그동안 1가구 1전화 시대를 열게 한 TDX를 비롯해 산업의 쌀이라 일컬어지는 반도체(4M DRAM) 개발로 한국을 메모리 반도체 강국으로 거듭나게 했다. 1990년대에는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2000년대 들어서 지상파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 휴대인터넷인 WiBro(와이브로) 등을 개발했고, 4세대(4G) 이동통신시스템 롱텀어드밴스드(LTE-Advanced)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이동통신 강국을 재확인시켜 줬다.

최근에는 조선 분야에도 최첨단 ICT를 접목한 SAN(Ship Area Network) 기술로 ‘스마트 선박’을 구축, 조선 강국의 신화를 이어가게 해줬다. 또 세계 최고 수준의 휴대형 한·영, 한·일, 한·중 자동통역기술, ‘지니톡(Genie Talk)’을 개발해 ‘언어장벽이 없는 대한민국’ 건설에도 일조하고 있다. 그 밖에 투과도 조절이 가능한 투명 디스플레이 기술 등을 개발하기도 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그동안 ETRI에서 개발한 기술들의 직간접적인 경제적 파급효과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11년 현재 169조8095억 원(매출액 기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ETRI는 지식재산의 보고(寶庫)이자 상용화 전진기지로도 유명하다. 2009∼2013년 5년간 특허출원 건수를 보더라도 국내외에서 모두 1만9056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같은 기간에 1372건의 기술을 기업에 이전해 1612억 원의 기술료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미국 특허 종합평가에서 3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세계적 시장조사평가기관인 톰슨로이터가 선정한 세계 100대 혁신기업에도 이름을 올렸다.

ETRI는 ‘IT벤처사관학교’이자 ‘우수 인력 양성소’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ETRI 벤처기업협의회(EVA)에 소속된 180여 개의 기업 중에는 거래소 상장업체 4곳, 코스닥 상장업체 18개가 포진해 있고, ETRI에서 배출한 우수 인력들은 대학과 기업을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IT 싱크탱크로서 손색이 없는 진용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순달·경상현·양승택·최문기 전 장관을 비롯해 최양희 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까지 배출하면서 최근에는 ‘장관 사관학교’가 돼가고 있다.

ETRI 관계자는 “현재 연구원 중에는 원장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는 연구원이 300명도 넘는다”며 “이제는 체계적인 기술창업 시스템을 구축해 ICT 창업의 주춧돌을 세우는 등 새로운 도전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박양수 기자 ysp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