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합의, 9·19성명 등 2차례나 약속 어겨

‘불신’ 오바마 새 대외정책 선언… 北 ‘변화’땐 관계개선 가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7일 쿠바와의 국교정상화를 발표하면서 현재 교착상태인 북·미관계에 미치는 함의가 주목된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쿠바는 고립에서 탈피하려는 정책을 꾸준히 써왔지만, 북한은 핵 개발을 비롯해 고립화 정책을 지켜온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쿠바와 북한의 이 같은 차이가 미국으로 하여금 한때는 같은 ‘불량국가’의 반열에 있었던 쿠바와는 국교 정상화의 길을, 북한과는 여전히 대립의 길을 걷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미관계가 급진전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게 정부·전문가들의 대체적 관측이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북한과 쿠바를 같은 선상에서 대할 수 없게 만드는 핵심은 ‘핵’이다. 북한이 쿠바와 달리 핵무기와 이를 운반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보유를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이 획기적인 정책 전환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국가의 고립도에서도 북한 만큼이나 전 세계와 단절된 국가는 없다. 북한이 어떤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손을 내밀기는 힘들다는 이야기다. 한·미 양국이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중지 등 태도 변화를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는 이유다.

북한과 쿠바의 지정학적 위치와 주변 정세도 많이 다르다. 쿠바는 미국 본토 턱밑에 위치, 미국의 직접적 이해관계에 속하지만 북한은 지리적으로도 멀게 위치해 있는데다, 남한과 중국이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에 미국의 결단만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미국에 북한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점도 작용한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합의와 2005년 9·19 공동성명 등 2차례 약속을 모두 어겼다. 핵·경제개발 병진노선을 채택한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 및 신뢰도 역시 여전히 평가가 끝나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2기 행정부 들어 외교적 유산을 남기려고 하지만 북한은 아직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쿠바는 미국의 결단만이 남은 상태로, 북한과는 다르다”면서 “북한이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메시지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궁극적으로는 북한과의 관계 회복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근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북한과는 지금도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신보영 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