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4일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 뉴타운 재개발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한 회원이 뉴타운 지정구역 해제 등 재개발 정책 중단을 요구하는 내용이 적힌 깃발을 들고 서 있다. 김동훈 기자 dhk@

‘해제조건 미달’ 서울 40곳 충돌
비대위 “주민피해 가중 멈춰야”
조합측 “중단하면 더 큰 손해”

부동산 활황땐 너도나도 시작
불황·지연에 분담금 증가 ‘분열’
“평행선 대립… 정부가 나서야”

지난 4일 오전 10시쯤 서울시청 앞에 모인 서울시 뉴타운·재개발 비상대책위원회(뉴타운 비대위) 회원 100여 명은 “뉴타운 지정구역 직권해제 하라”,

“내 재산 빼앗는 재개발조합은 즉각 해산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2시간 동안 집회를 벌였다.

신정, 북아현, 답십리, 금호 등 20여 곳의 뉴타운 재개발 정비구역 주민으로 구성된 뉴타운 비대위 집회에는 거동조차 불편한 고령자도 다수 포함돼 있었지만, 절박함이 만들어내는 집회의 열기는 뜨거웠다. 집회에 참가한 북아현 뉴타운 주민 김모(72) 씨는“경기가 이렇게 안 좋은 상황에서 재개발되면 미분양이 뻔해 그 손해를 우리가 다 떠안아야 한다”며 “박원순 시장이 뉴타운 사업을 중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낙후된 주택가에 충분한 도시 기반시설을 확충한다는 취지로 지난 2000년대 초부터 논의된 뉴타운 재개발 사업이 추진과 중지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난마처럼 얽혀 갈등만 키우고 있다.

10일 뉴타운 비대위와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까지 뉴타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606개 구역 중 163군데가 뉴타운 구역 지정이 해제됐고, 주민 반대 등으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곳은 160여 개 구역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40개 구역에서 결성된 반대 조직은 뉴타운 비대위라는 연합 단체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반대 투쟁에 나서고 있다. 번듯한 집과 부동산 수익 등 뉴타운 논의 초기 주민들이 꿈꾸던 장밋빛 미래는 극심한 경기 침체와 함께 희미해졌고 이제는 “우리 동네에 뉴타운을 만들지 말아달라”는 반대 여론이 힘을 키우고 있는 모양새다.

◇ 늘어나는 분담금…대표적인 이익 갈등 = 뉴타운 재개발을 둘러싼 대립의 뒤에 돈과 관련된 치밀한 셈법이 깔려 있다. 따라서 ‘이익 갈등’의 전형으로 분류되곤 한다. 뉴타운 사업의 수익성이 예상되던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다지 크지 않았던 반대 여론이 부동산 경기가 침체를 겪던 4∼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졌다는 점에서 경제적 갈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르는 것은 분담금(총 사업 비용에서 수익을 뺀 금액으로 주민들이 뉴타운 건설에 투입해야 할 돈)의 증가다. 이계원 뉴타운 비대위 대표는 “재개발 특성상 시간이 흐를수록 물가상승률 등의 요인으로 분담금은 자연히 늘게 된다”며 “여기에 미분양이 발생해 할인분양이 이뤄질 경우 그 손해 역시 주민들의 분담금으로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신정 2-1구역의 반대 비대위에 따르면 조합 설립 때만 해도 0원이던 한 가구당 추정 분담금은 현재 2억 원 이상으로 껑충 뛰었다. 신정 2-1 주민 임연승(여·72) 씨는 “수억 원의 분담금을 내거나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은 지금 헐값에 집을 팔고 나가라는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반면 여전히 뉴타운 추진을 주장하는 조합 측은 이제 와 사업을 중단하는 것은 더 큰 손해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서울 시내 한 뉴타운 구역의 조합 관계자는 “설계용역, 조합 사무실 운영비 등 회수할 수 없는 매몰 비용만 수십억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발을 빼기는 이미 늦었다”며 “일단 상황을 봐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신정 2-1 구역 조합장인 임영호(57) 씨는 “뉴타운이 손해인지 이익인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며 “우리 구역의 경우 투자 목적의 분양자를 확보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 발만 동동 구르는 ‘官’ = 이처럼 ‘민·민’ 수준에서 갈등 해결의 답을 찾지 못하다 보니 결국 ‘관’이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뉴타운 갈등은 ‘관’이 민간사업자를 통해 정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정책 갈등’ 성격도 있는 만큼 ‘민’의 힘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갈등 해결의 공을 떠안은 서울시 등 ‘관’의 대처가 성에 차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나마 서울시가 나서 지난 2012년 2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주민 50% 이상이 동의할 경우 조합 해산이 가능하다는 조항을 출구전략으로 마련했지만, 그 수치가 비현실적인 데다 내년 1월까지 효력이 있는 한시법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신정 2-1구역(40%), 답십리 18구역(46%), 북아현 2구역(48%), 대조 1구역(40%) 등 조합 해산에 필요한 50%의 주민 동의를 확보하지 못한 지역을 중심으로 지난 7월 뉴타운 비대위가 결성돼 “조합 해제 동의율을 25% 이하로 하향 조정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근수 뉴타운 비대위 공동대표는 “이미 대부분 뉴타운 지역에 외부 투기꾼들이 조합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상황에서 50% 이상의 동의를 얻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며 “서울시가 직권으로 (뉴타운) 지정 해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뉴타운 구역 지정 해제 기준 마련은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라 정치권과 정부 부처 등과 협의가 필요하다”며 “일단은 의견 수렴 과정을 충분히 거친 뒤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방치되는 갈등에 커지는 불신 = 뉴타운 사업이 마땅한 출구를 찾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갈등이 계속 커져 대화는 점점 요원해지는 분위기다. 정 대표는 “조합 해산에 동의하지 않는 조합원은 마지막까지 탐욕을 보이고 있다”며 “패색 짙은 도박판에서 혼자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꼴”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뉴타운 사업 추진을 주장하는 조합 임원 김모(75) 씨는 “경기가 좋을 때는 찬성한 사람들이 손해가 예상되자 소수의 조합 임원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며 “이런 선동꾼들과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50%의 동의로 조합이 해산되더라도 매몰 비용을 누가 내야 할지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하지만 서울시는 일단 조합 결성이 되지 않은 구역을 대상으로 심사를 거쳐 매몰 비용 70%를 지원하겠다는 대책만 세워놓고 있을 뿐, 기존 조합이 해산될 경우에 대해서는 어떤 방침도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18구역 주민 이순녀(여·61) 씨는 “조합 임원에게만 부담을 국한하는 판례와 일반 조합원에게도 지불 의무를 규정하는 판례가 모두 존재하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내놓은 대책은 실제로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말만 번지르르한 서울시를 이제는 믿지 못하겠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이근평 기자 istandby4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