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유가대책 논의 27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 각료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등 12개 회원국의 석유장관들이 저유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OPEC는 이날 회의에서 감산을 하지 않고 기존 원유 공급 할당량을 준수하기로 결정했다. EPA 연합뉴스

OPEC 감산유보 왜

1. 美 셰일가스 견제 차원
2. 시장 영향력 하락 방지
3. 亞경제 회복 장기적 유리

‘원유 카르텔(가격담합)’로 불리는 산유국 조직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을 단행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사실상 유가를 더 떨어뜨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압달라 엘 바드리 OPEC 사무총장은 27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감산 보류에 합의한 각료회의 결정을 발표하면서 “가격 목표치는 없다”고 밝혔지만, 세계 경기 침체로 원유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공급량을 그대로 유지하면 가격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유가 하락으로 수출 수익이 감소한 OPEC 회원국들이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유가를 떨어뜨리려는 배경에는 미국의 셰일 오일(셰일가스가 매장된 셰일층에 굳어진 채 지하 퇴적암층에 존재하는 원유)이 있다. 셰일 오일 개발에 돌입한 미국이 세계 원유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OPEC 회원국들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가격이 하락하면 생산단가가 비싼 셰일 오일 시장이 먼저 무너질 것이라는 계산이다. 시장에서는 OPEC가 배럴당 60달러까지 유가를 끌어내렸다가 80달러 수준에서 유지하려는 구상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셰일 오일 업체들에 타격을 입힌 뒤 다시 유가를 올리면 된다는 얘기다.

OPEC가 유가 안정을 위해 감산을 단행하면 미국,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들이 부족분을 메우면서 시장 점유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알리 알 오마이르 쿠웨이트 석유장관은 27일 OPEC 각료회의 직후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와탄 위성채널과 인터뷰를 갖고 “우리가 생산량을 줄이면 시장의 다른 사업자들이 (생산을 늘려) 감산분을 채우게 된다”며 “다른 국가들이 생산량을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OPEC는 더 이상 감산의 부담을 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OPEC의 핵심 원유 시장인 아시아의 수요를 고려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OPEC 입장에서는 당분간 저유가를 유지해 아시아 경기를 살리는 것이 미래의 원유 수요를 확대하는 데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문제는 OPEC의 일부 회원국들이 저유가로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감산 보류 결정을 주도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은 저유가를 감당할 여력이 있지만 앙골라, 이라크, 베네수엘라 등은 재정 위기 상황에 몰릴 수 있다.

한편 미국산 셰일오일을 잡겠다는 OPEC의 복안에도 불구하고, 정작 미국은 내심 미소를 짓고 있다. 단기적으로 셰일 오일 생산업계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있지만 외교·안보 면에서는 탄력을 얻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와 이슬람국가(IS) 격퇴작전에 저유가는 상당한 ‘우군’으로 기능할 것으로 보인다. 저유가가 계속되면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등을 둘러싼 대러시아 경제제재의 효과가 강화될 수 있다.

IS도 주수입원이 원유 밀수출인 만큼 저유가가 지속될 경우 판로가 줄어들어 재정적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미국의 IS 격퇴 작전 역시 이전보다 한층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김하나 기자 hana@, 워싱턴=이제교 특파원 jk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