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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는 얼었어도 선비 손에 놀고 탱자는 잘생겨도 거지 손에 논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탱자를 낮춰 본 것이다.

요즘은 보기 드물지만 예전에 집집마다 탱자나무를 심은 것도 과실을 수확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가시가 날카로운 탱자나무가 울타리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늦가을에 탱자나무 울타리에 노랗게 열매가 달려도 탱자 맛이란 게 시고 쓰면서 떫어서 따가는 사람도 없었다.

이처럼 과일로서 탱자의 지위는 형편없었지만 한방에서는 귀한 약재로 대접받았다. 특히 가려움증 등을 해소해주는 피부 진정제로서의 효능이 인정을 받아왔다. 한방에서는 덜 익은 탱자를 편으로 썰어 말린 것을 지실(枳實)이라고 하는데 동의보감에도 그 효능이 “지실은 성질이 차며, 맛은 쓰고 시며 독이 없다”면서 “피부의 심한 가려움증과 담벽(痰癖)을 낫게 하며 복부팽만감을 유발하는 창만과 명치 밑이 답답하면서 아픈 것을 낫게 하고 오랜 식체를 삭인다”고 돼 있다.

탱자의 이 같은 효능 때문에 한방에서는 일반 피부염은 물론 알레르기성 피부염과 염증 등의 치료에 널리 이용돼왔다. 탱자의 효능은 현대 과학에 의한 성분 분석에서도 하나둘 입증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성분이 헤스페리딘 성분이다.

우리 몸이 가려움을 느끼는 것은 히스타민이라는 염증 매개물질 때문이다. 히스타민은 히스티딘이란 아미노산을 재료로 우리 몸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체내에서 합성된다. 이 히스타민이 평소에는 비만세포 속에 저장돼 있지만 피부에 자극이 생길 경우 점막 밑 말초신경 등으로 가서 피부를 가렵게 만든다. 피부가 건조할 경우 가려움증이 더 심해지는 것도 외부 자극에 민감해져 그만큼 많은 양의 히스타민이 피부로 몰려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포로부터 히스타민의 방출을 억제하여 알레르기 증상과 열을 줄여주는 성분이 바로 탱자의 헤스페리딘 성분이다.

탱자를 비롯한 다른 감귤류에도 많은 헤스페리딘은 플라보노이드계 물질로 활성산소 형성을 억제해 노화지연 등의 항염·항산화 효과를 보이며, 모세혈관의 삼투압을 조절해 모세혈관 건강을 개선해주고, 모든 성인병의 원인 제공자 중 하나인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역할도 한다.

탱자에 풍부한 비타민C 역시 ‘피부 보약’ 중 하나다. 비타민C인 아스코르빈산은 피부 구성물질인 콜라겐의 기본 재료로 피부 노화를 방지해주고, 미백효과와 보습효과도 보여준다. 비타민C는 항산화 효능도 뛰어나 각종 질환으로부터 피부를 잘 보호해준다.

또 탱자의 구연산 성분 역시 피부에 좋은 것 중 하나다. 구연산은 단백질과 지방질, 탄수화물의 대사 작용을 돕고, 몸속 조직 안에 저장돼 있는 지방을 제거하는 데도 일조한다. 또 구연산은 정혈과 살균 작용이 뛰어나 나쁜 피를 정화해준다. 특히 세포의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만들어 기미가 생성되는 것을 막는다. 구연산은 피로 해소에도 좋다. 피로감은 근육에 젖산이 고여 나타나는데 구연산은 젖산을 분해해준다

탱자의 피부 진정 효과에 관련해서는 특유의 이담작용도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인체의 화학공장인 간에서 만들어내는 지방 소화 액체인 담즙은 소화흡수를 돕는 과정에서 ‘담석’이라 불리는 찌꺼기로 굳어질 수 있다. 이담작용이란 담즙이 이처럼 체내에서 굳어지지 않고 잘 배출되도록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한방에서는 이담작용이 있는 약물들을 피부가 가려운 소양증에 오래전부터 처방해왔다. 그런데 그 같은 이담작용이 있는 약물 중의 하나가 말린 탱자, 즉 지실을 달인 물이었다.

탱자가 숙취 해소에 좋다는 것도 이처럼 간 기능을 간접적으로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탱자의 효능 중 놓쳐선 안되는 것이 소화기능 개선이다. 탱자는 위장의 연동운동을 촉진해 위하수, 위 무력증을 개선하고 위 내용물의 배출을 촉진하여 복부팽만감을 개선하고 변비를 완화해주며, 장을 편안하게 해준다.

글 =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사진 =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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