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2일 일본 도쿄의 외환거래업체 관계자가 115엔대로 치솟은 엔·달러 환율이 표시된 모니터와 함께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관련 뉴스를 보도하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이날 아베 총리가 내년 10월로 예정된 소비세 인상 계획을 연기하고 연내 중의원 총선거를 단행할 것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정권 출범 이후 순항해 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 ‘아베노믹스’가 시험대에 오른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해외 외교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17일 이후 검토를 거쳐 내년 10월 소비세를 현행 8%에서 10%로 추가 인상하는 계획을 2017년 4월쯤으로 연기한다는 방침이다. 일본 정부는 여야가 합의해 제정한 법률에 따라 지난 4월 1차 소비세 인상을 단행해 5%였던 세율을 8%로 올렸고, 내년 10월에도 추가로 2%포인트를 인상해야 한다. 아베 총리는 경기 침체를 감안해 소비세 추가 인상 시점을 연기하고, 이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묻는 차원에서 의회를 해산해 총선거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차 소비세 인상의 여파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1%로 추락하는 쓰라린 경험을 한 아베 정부로선 내년 소비세 추가 인상을 주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장 17일 발표되는 3분기 GDP 성장률도 2%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양날의 칼’ 소비세 인상 = 일본의 소비세 인상 계획은 경기 부양과 재정 건전성 회복이라는 두 가지 과제 사이에 놓여있다. 우선 아베 정부의 ‘지상 목표’라고 할 수 있는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선 소비를 자극해야 하는데 세금을 올리면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예정대로 내년 10월에 소비세를 추가 인상하면 지난 4월 1차 인상으로 가뜩이나 움츠러든 소비심리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0여 년간의 침체를 딛고 가까스로 살아난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증세를 포기하면 일본 정부의 부채규모는 천문학적 수준으로 불어나게 된다. 양적 완화와 함께 대규모 재정지출을 단행한 일본은 매년 40조 엔의 신규 국채를 발행하고 있다. 국가 부채는 이미 1000조 엔을 돌파했고,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224.6%에 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아베 정부는 2015년에 국가 재정 적자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지만, 증세 없이 재정 건전화를 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본은행의 대규모 양적 완화가 종료되는 시점도 감안해야 한다. 재정 건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은행이 출구 전략을 단행, 국채 매입량을 줄여나가면 장기금리가 급등하는 등 경제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찬반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4일 총리관저에서 열린 전문가 회의에서는 내년 10월 소비세 인상을 찬성하는 의견이 5명, 반대 의견이 3명이었다. 예정대로 증세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은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증세를 미룰 수는 없다”고 했고, 소비세 인상을 연기해야 한다는 쪽에서는 “지금 경제상황에서는 무리”라는 주장이 나왔다.

금융권과 소비자 사이의 입장 차도 크다. 재정 건전성에 초점을 맞추는 금융권과 소비 여력이 줄어들 가능성을 우려하는 일반 국민의 의견이 확연하게 갈리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금융시장 관계자 100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8%가 ‘예정대로 인상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아사히(朝日)신문의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는 71%가 ‘소비세를 올릴 상황이 아니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장기집권 좌우할 복병 될까 = 소비세 인상 문제의 파장은 경제를 넘어 정치권으로 밀려오고 있다. 아베 총리가 소비세 인상을 연기하는 결정을 한 뒤 중의원 해산을 선언해 총선거를 단행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다. 소비세 인상에 대한 민의를 묻겠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장기집권으로 가기 위한 정략적 결정이라는 분석도 많다. 여론이 소비세 인상 연기 쪽으로 기울어있는 상황에서 총선거를 치르면 자민·공명 연립 여당이 다시 의회를 장악할 수 있고, 탄탄한 정치적 기반하에서 정권을 운영하게 된다는 구상이다.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임기가 끝나는 아베 총리가 지지율이 더 떨어지기 전에 총선거를 치르는 편이 총재 재선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다는 분석도 있다.

연립 여당 자민당과 공명당은 12월 14일을 총선거 투표일로 상정하고 선거 준비를 시작했다. 자민당은 주말인 15∼16일 중의원 총선거 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선거 포스터 촬영, 선거 사무소 임대까지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민당 일각에서는 조기 해산이 아베 정권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노다 다케시(野田毅) 자민당 세제조사회장은 “(총리가)잘못된 판단은 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다. 명분 없는 선거는 좋지 않다”면서 “소비세 인상을 연기하면 금리가 오르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소비세 인상을 미루는 결정이 장기적으로는 아베노믹스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떨어뜨리고, 주가 하락 등으로 이어지면서 일본 경제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아베노믹스를 전면에 내세워 지지율을 견인해 온 아베 정권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금융투자 전문가들은 “소비세 인상을 연기하는 것은 아베노믹스가 실패했다는 인상을 주고 투자자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증세가 미뤄지면 재정 확대 및 법인세 감세 등 시장 지원 정책도 기대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김하나 기자 hana@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