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 작전요구성능(ROC)을 충족하지 못한 무기체계 도입은 유사시 전력 공백으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그럼에도 새로운 무기체계가 도입될 때마다 초기 엄격하게 설정됐던 무기 성능의 기준은 번번이 낮춰지기 일쑤였고, 이에 따라 일선 부대 장병들이 사용하는 무기 수준도 낮아졌다. 결국 대북 핵심전력에서 구멍이 숭숭 뚫리게 됨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군의 작전요구성능이 수정된 사업 중에는 이른바 군피아(군대+마피아)들이 엮인 경우도 흔하다. 북한과 마주하는 일반전초(GOP)의 경계시스템을 과학화하는 사업에는 사업 초기부터 업체들이 국군기무사령부 등 군 출신을 특채해 물의를 일으켰다. 휴전선 155마일(250㎞) 철책 구간에 무인경계 시스템을 설치하는 ‘GOP 과학화 경계시스템’은 주요 축선별로 수백억 원대의 사업비에 더해 입찰만 되면 매년 관리예산까지 받을 수 있어 국내 대기업 간의 경쟁이 치열했다.

GOP 과학화 경계시스템은 2006년 8월 육군 5사단에 시범 적용하면서 시작돼 성능을 ‘99% 탐지율’로 적용했으나, 2013년 방위사업청은 중서부전선 사업을 시작하면서 이를 90%로 완화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특정업체 봐주기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과학화 경계시스템은 도입 초 제자리걸음을 하다가 최근 속도를 내고 있으나, 방산비리 수사에 나선 검찰과 군의 합동수사단의 표적으로 알려질 만큼, 입찰과정 중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군의 작전요구성능이 수정된 장비 중에는 △120㎜ 박격포 탑재·사격 지휘차량 △차기고속정(PKX-B Batch-1) △30㎜차륜형 대공포 등 일선에서 활약할 무기들도 다수 차지하고 있다. 이들 무기는 최초 기준보다 성능이 낮춰져 납품돼 유사시 성능을 발휘하는 데 제한이 따를 수 있다. 이에 대해 군사전문지 디펜스21플러스 김종대 편집장은 “과거부터 작전요구성능 수정 과정이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됐다”며 “합동참모본부에서 기준을 수정하는 과정이 더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국내 업체의 기술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요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군이 사업을 추진하며, 각종 기능을 탑재하려 하면서 개발이 지연된다는 주장이다. 국내의 한 방산업체 관계자는 “군에서 기준을 정하는 과정이 투명하지 않아 계속해서 작전요구성능 수정이 일어나게 되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군이 실제 선진국의 운용평가를 기준으로 작전요구성능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카탈로그에 적힌 단순 숫자만 보고 기준을 정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말했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