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나서서 자국 기업의 글로벌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나라가 도대체 어디 있느냐.”

16일 컨슈머워치의 단통법 해법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선 제조사의 판매장려금 분리공시제를 다시 추진하려는 정책당국과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해 강한 우려가 제기됐다.

단통법 시행후 소비자 반발이 잇따르자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동통신사업자의 보조금과 제조업자의 판매장려금을 분리공시하는 내용을 담은 단통법 개정안을 제출했고,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도 이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 제도는 당초 단통법 고시안에 포함돼 있었으나, 규제개혁위원회가 삭제를 권고해 제외됐다.

이날 토론회에서 조동근(경제학) 명지대 교수는 “정책당국과 입법 관계자들은 시장 혼란이 분리공시제가 제외됐기 때문에 생겼다고 변명하지만 이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서 “정책 실패의 ‘희생양’을 찾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이동통신은 단말기에 이동통신서비스가 더해진 결합상품으로, 이를 근거로 정책 당국은 제조사와 통신사를 ‘같은 범주’로 묶으려 하지만 단말기 제조와 이동통신 서비스 제공은 ‘업(業)의 영역과 성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통신사는 공공재인 주파수를 국가에서 임차한 사업자이기 때문에 통신규제를 받을 수 있지만, 제조사가 통신사업자와 같은 수준의 규제를 받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무엇보다 국내 단말기 제조사들이 생산제품의 90% 이상을 수출해 내수 시장 비중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제조사 장려금이 공개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제조사의 협상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계에서 판매하는 모든 단말기에 동일한 장려금을 지급해야 하는 만큼, 결국 분리공시는 “국가가 강제로 단말기 제조업자의 영업 비밀을 공개하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영업비밀도 일종의 재산권”이라며 “이를 침해하는 것은 헌법이 정한 ‘과잉금지’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단통법 고시 제정 당시 분리공시제가 제외된 과정의 ‘적법성’도 상기시켰다. 규제개혁위원회는 지난 9월 방송통신위원회의 고시안에 대해 “제조사의 장려금 분리공시가 상위법(단통법)에 명백히 위배된다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에 따라 이를 제외하도록 권고한다”고 결정했다. 단통법은 ‘이동통신사가 미래창조과학부와 방통위에 자료를 제출할 때 제조사별 장려금 규모를 알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승훈 기자 oshu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