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당이 버려야 할 것은 ‘나와 다른 것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다. ‘우리는 선(善), 새누리당은 악(惡). 우리 계파는 선, 다른 계파는 악’이라는 폐쇄성이 당을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들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중진 의원은 19일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비대위원장 영입 시도로 촉발된 당의 극심한 내분 사태에 대해 이렇게 진단하며 통렬한‘자아비판’을 했다. 그는 “국민 47%의 지지를 받는 새누리당이 과연 악인가, 우리 지지층인 국민의 20%만 바라보는 정치는 과연 선인가”라며 “우리 내부는 어떤가. 당보다는 계파이익을 우선하는 잔인한 계파 정치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초선 의원은 “국민과 당원은 없고 ‘내 계파’만 존재하는 형국”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폐쇄적 끼리끼리 문화’가 당을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폐쇄성은 이념과 정체성, 출신 성분이 비슷한 인사만 골라 정치권에 영입하는 ‘현대판 음서제도’식 인력충원 구조로 인해 계파 정치를 더 강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명예교수 영입 실패와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의 ‘탈당 시사 파동’은 이 같은 폐쇄적 당 문화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새누리당 대선 캠프 출신의 이 명예교수를 당대표직인 비대위원장 자리에 앉히는 것은 당의 정체성에 반한다는 게 반대파들의 논리였다. 아무리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로 평가받는 인사라 할지라도 박근혜정부 ‘1등 공신’은 결코 우리 편이 될 수 없다는 폐쇄성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성곤 의원은 지난 14일 당 내부 통신망에 “동종교배는 열성을 낳고 이종교배가 우성을 낳는다”며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만 교류하면 어떻게 우리의 사고를 넓히고 변화를 꾀할 수 있을까. 우리는 동종교배만을 원하는 것인가”라고 한탄했다.

이는 끼리끼리 뭉치는 데 익숙한 운동권 시절의 관성이 유지된 탓이기도 하다. 선거 때마다 운동권·노동권·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을 영입 1순위로 삼았던 것도 이젠 다양성을 훼손하는 ‘독’이 됐다. 일각에서는 ‘야당판 음서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체성’이 공천 기준이 됐던 19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비례대표 의원 중 일부는 다수 국민보다는 ‘그들만’의 대변자가 돼 갔다. 현재 이들 중 일부는 새정치연합 핵심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이 당의 의사결정을 주도하며 강경투쟁을 이끌어 갈 때 국회는 멈춰서기 일쑤였다. 세월호특별법 여야 협상안이 두 차례나 깨지고 야당이 장외로 나간 데에는 이들의 목소리가 과도하게 반영됐다는 시각이 크다.

당내 소신파로 꼽히는 황주홍 의원은 “아마도 새누리당을 의회 정치의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타도와 섬멸의 대상쯤으로 여기는 것만 같다”면서 강경파를 향해 “한국 정치를 우리 혼자 하나. 우리 당 사람들은 우리 혼자 정치하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이념적 폐쇄성이 정치인의 책무인 갈등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 셈이다.

정치의 폐쇄성은 ‘계파’라는 명찰을 달면 더 극심하게 드러난다. ‘계파가 다르면 밥도 같이 안먹는다’는 말이 의원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다. 계파 간 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니 신뢰 관계가 형성될 리 만무하다. 불신은 오해를 부르고, 또 다른 불신을 낳는다. 소통을 한들 뒤돌아서서는 자기식대로 해석하기 바빴다. 박 위원장 측과 친노(친노무현) 계 좌장격인 문재인 의원 측이 이 명예교수의 영입 과정을 놓고 진실공방을 벌이고, 특정 계파를 공격하는 각종 ‘설’이 난무했던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박 원내대표의 탈당설이 불거질 때에는 김한길 전 공동대표의 ‘배후설’ ‘동반 탈당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김 전 대표 측은 “친노의 소설 아니냐”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수도권 재선 의원은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제로섬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며 “국민들 눈에는 이전투구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 패자가 됐다”고 말했다.

윤정아 기자 jay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