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한국전력 본사 부지 인수전에서 ‘패자’가 된 삼성전자와 그룹 미래전략실 관계자들은 덤덤한 반응이었다. 한 관계자는 “우리는 돈을 낼 것도, 벌 것도 없다. 아무 변화가 없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재계 서열 1위가 2위에게 밀려 자존심이 조금 상했다는 것 외에 뭐가 있겠느냐”고 했다.

당초 삼성그룹은 인수전 참여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는 ‘보안모드’를 취해 왔다. 실무진의 덤덤한 반응과는 달리, 그룹 최고경영진은 현대차그룹 못지않은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는 게 삼성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는 “입찰 마감이 임박할수록 보안에 신경 썼던 것은 그만큼 위에서 강한 매수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인수 실패로 인한 어느 정도의 ‘내상’은 불가피해 보인다. 우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력 평가에 미칠 영향이 관심사다. 부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와병 중인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처음으로 결단한 대규모 투자 시도였기 때문이다. 재계에선 이번 인수전이 이 부회장의 사업추진력과 경영리더십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신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도 일부 차질이 예상된다. 이번에 단독으로 입찰한 삼성전자가 지난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실적 부진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를 만회할 돌파구를 찾는 것은 여전히 최대 숙제로 남게 됐다. 전체 그룹 투자의 9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가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찾지 못할 경우, 삼성그룹 전체의 경영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삼성은 국내 정보기술(IT) 산업의 요람인 테헤란로의 시작점인 강남역 사거리에 통합사옥인 삼성타운을 조성했고, 그 반대편 끝점인 삼성동에 ‘삼성IT타운’ 조성을 통해 연관산업 집적효과를 노렸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러한 구상이 무산된 데 대한 실망감이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경영안정성 측면에선 호재라는 시각도 있다. 한 금융투자사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한전 부지 활용도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고, 수익성 측면에서 커다란 이점도 없었다”면서 “무엇보다 무리한 투자지향성으로 그룹 전체에 부담을 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경영적 합리성을 지킨 데 대해 시장의 신뢰가 더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오승훈 기자 oshu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