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명박정부 시절 4대강살리기 사업과 대형 공공사업에 참여했던 한 대형 건설사는 입찰 담합 문제와 관련, 국회 증인 채택 이야기가 나오던 지난해 여야 의원들에게 최고경영자(CEO)의 증인 신청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의원들과 친분이 있는 하청업체를 추천할 경우 적극적으로 공사 수주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이 약속 후 한 중진 의원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하청건설사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이 대형 건설사가 발주한 공사 5건을 잇달아 수주했다.

#2. 한 금융권 업체의 대관 업무 담당자는 25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정감사를 앞두고 최근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태나 각종 불법 사건과 관련해 의원실 측 자료 요구가 잔뜩 들어오고 있다”며 “분위기가 흉흉해 의원실 관계자들이 뭐든 부탁을 해 오면 안들어 줄 수 없는 형편”이라며 “대개 대출 금리를 인하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가 많아 최우수 고객이나 직원들이 받는 우대금리 수준으로 대출을 받도록 해준다”고 토로했다.

#3. 최근 한 여당 의원은 출판기념회를 열며 소관 상임위에 관련된 기업 대관 담당자들을 불러 일반적으로 다른 의원들의 출판기념회에는 ‘봉투에 얼마씩 넣었는지’를 물어보고 의무적으로 참석하고 ‘봉투’도 보내라고 했다는 소문이 정치권에 돌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정치인들은 기업가들에게 ‘당신네 산업을 무너뜨릴 법안을 내가 갖고 있다’고 말한 뒤 정치자금을 건네받으면 ‘좋다. 대신 다른 산업을 박살내겠다’고 화답하는 등 행패를 부리기 일쑤”라면서 “온갖 산업을 돌아가며 위협하는 게 그들의 업무인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여의도를 둘러싼 한국 정치인과 기업, 유관기관들의 로비 백태는 로비의 천국 미국을 뺨칠 정도다. 정치인들은 기업이나 업계를 옥죄는 규제 법안을 발의하거나 국정감사 등에서 특정 기업을 겨냥한 공격을 퍼붓고 기업은 이를 예방하거나 막기 위해 ‘기름칠’을 하는 구조다.

반대로 기업들이 업계에 유리한 법안 통과 등을 위해 먼저 정치권에 ‘구애’를 보내기도 한다. 이 같은 정치권과 기업·유관기관 간에 오가는 ‘거래’ 속에서 불법 정치자금이 형성되거나 탈세·횡령 등 불법이 만연한다. 이 같은 여의도의 ‘뒷거래’가 결국 정책 비용 증가로 이어져 국민의 부담으로 연결된다는 비판도 있다.

과거에는 특정 법안의 처리를 위해 혹은 처리를 막기 위해 기업의 로비가 만연했다면 최근에는 이 같은 로비가 ‘상시적으로’이뤄지고 있다. 주요 대기업들은 국회 동향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대관 업무팀을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으며, 정치권 출신 인사 영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평소 정기적으로 의원실을 방문하거나 밥자리, 술자리 만남을 통해 ‘기름칠’을 하는가 하면 ‘외유성’ 해외 출장을 정기적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보통 9월 국정감사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관련 상임위 여야 의원실을 돌며 증인 신청에서 오너들을 빼기 위해 관련 정지작업을 하며, 꼭 해당 그룹이나 기업에 대해 증인신청을 한다고 하면 ‘오너보다 CEO가 더 잘 알고 있다’고 설득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밝혔다. 만약 해당 그룹의 오너가 국감 증인으로 신청될 경우 관련 팀이나 부서는 ‘줄초상’이 나는 수준으로 질책을 당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최근에도 국감을 앞두고 주요 그룹들의 경우 올해 국감 증인신청에 누가 올라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열심히 작업 중”이라고 말했다.

과거 의사협회의 국회 로비 사건과 관련, 장동익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의협과 관련한 국회 상임위 소속 의원들에게 매달 200만 원 가량의 돈을 지속적으로 제공했다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기도 했다. 한 대관 업무 관계자는 “평소 대관 담당자들이 보좌관들과 의원들을 상대로 술 사고 밥 사는 일은 부지기수”라며 “일부 의원실에서는 여전히 대놓고 술 사라, 골프 약속 잡아라 주문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여름 휴가철과 명절은 기업들엔 기회이자 위기다. 정부 산하기관이나 기업의 대관 업무 종사자들은 “휴가철 콘도와 연수원 숙박 예약을 해달라는 부탁이 쇄도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고 말했다. 당연히 무사히 예약을 완료할 경우엔 눈도장을 확실히 찍을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엔 큰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출판기념회 역시 비슷하다. 최근 국회의원들은 ‘봉투’는 기본에 CEO나 고위 임원이 직접 참석해 자리를 채워주길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주요 의원들의 출판기념회에서는 어지간하면 한 자리에서 만나기 힘든 주요 기업 CEO들이 나란히 앉아있는 진기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기업이나 유관기관에서 의원들의 ‘등급’을 매겨 ‘차등 로비’가 이뤄지는 웃지 못할 광경도 연출된다. 한 이익단체 종사자는 “입법 심사 때 정치인들을 A·B·C 등급으로 매겨 차등 관리하는 것은 통상적인 과제”라고 말했다. 다른 기업의 관계자는 “힘 있는 여당의 중진 의원이나 상임위원장, 상임위 간사 의원들을 초선 의원들과 동일하게 대접하면 오히려 안하니만 못하다”며 “이들 의원에게는 아무래도 훨씬 더 많은 걸 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민병기·김순환·박정경 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