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과 보좌진의 관계라는 게 예전엔 공동운명체적 성격이어서 배신이란 게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의원에게 억하심정이 생기면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고 검찰로 달려가니 이제는 눈치를 봐가며 따로 챙길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국회의원이 연루된 비리사건에는 공통적으로 운전기사나 비서 등 보좌진이 등장한다. 어딜 가고 누굴 만나는지 훤히 아는 운전기사와 회계장부를 관리하는 비서, 입법 업무와 지역 민원을 담당하는 보좌진은 의원의 비밀과 약점을 모두 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가에선 의원의 정치 생명은 이들 ‘입’에 달려 있다는 말이 정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문제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의원과 보좌진 관계도 한배를 타고 굴곡을 함께하는 공동운명체적인 성격에서 갑을 간 계약관계로 변하면서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17대 국회때까지만 해도 보좌진은 정치 지망생인 경우가 많았다. 정치인이 되기 위해 자신이 모시는 의원을 정치적 동지이자 스승처럼 여겼다. 그래서 행여나 의원이 연루된 비리 의혹이 터져나와도 ‘주군’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모든 혐의를 뒤집어 쓰고 옥살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8대 국회 이후 이들 관계가 고용인(의원)-피고용인(보좌진)의 철저한 계약 관계로 변하면서 미묘한 긴장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절대 ‘갑’인 의원의 비밀을 간직한 ‘을’이기에, 의원이 보좌진을 경시했다간 바로 탈이 났다. 국회의 한 원로 인사는 “정치권에 몰아치는 검찰의 사정 바람도 이들의 관계 변화로 비롯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출판기념회를 통한 ‘입법 로비’ 혐의를 받고 있는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의원실에서도 극비로 관리되는 출판기념회 장부가 신 의원의 전 보좌관을 통해 검찰에 넘어가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철도 비리’ 혐의로 구속된 조현룡 새누리당 의원도 운전기사와 비서가 체포되면서 수사가 급물살을 탔다. 같은 당 박상은 의원 역시 임금 착취 의혹을 제기한 전직 비서관과 운전기사 등이 3000만 원이 든 돈가방을 제보하면서 결국 철창 신세를 지게 됐다.

주군(의원)에 비수를 꽂는 부하(보좌진)들의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현영희 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총선 당시 공천을 받게 해달라며 5000만 원이 들어 있는 쇼핑백을 전달했고, 이 과정을 지켜봤던 운전기사가 선거가 끝난 후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면서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박덕흠 의원도 선거운동을 도와준 운전기사에게 1억 원을 준 혐의로 기소(무죄 확정 판결)되는 등 한동안 마음 고생을 했다.

작금의 사건을 계기로 의원들 사이에서는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는 보좌진들에게 “약점 잡히지 말자”는 경계령까지 나돌고 있다. 거기다 한발 더 나아가, 보좌진이 다른 마음을 먹지 않도록 특별히 챙겨주는 전직 의원들도 등장했다. 3선 출신인 한 전직 의원은 “명절 때 운전기사를 가장 먼저 챙기고, 그 다음으로 의원실 보좌진을 챙긴다”고 배신 방지 노하우를 털어놨다.

또 다른 현직 의원은 “보좌진이 의원을 배신하는 건 이들을 인간적으로 모욕하는 등 지나치게 하대했던 사례들이 쌓였다가 해고하는 과정에서 분노가 한순간에 폭발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 해고를 할 때도 모멸감을 주거나 홀대하지 않고 최대한 예의를 갖추려 노력한다”고 토로했다.

현일훈 기자 on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