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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8시 20분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림역 승강장에서 A(25) 씨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한 20대 여성을 발견하더니 근처를 맴돌았다.

A 씨와 10m 떨어진 지점에서 단속을 벌이던 서울지방경찰청 지하철경찰대 최혜성(여·37) 경위와 신현광(40) 경사는 순간 ‘느낌이 왔다’는 표정이었다. A 씨는 지하철이 역내 승강장 쪽으로 진입하자 여성에게 바짝 접근한 채 따라 탔다.

그러나 지하철에 올라탄 A 씨는 당황한 듯했다. 객실이 별로 붐비지 않았기 때문이다. A 씨는 곧바로 다음역인 봉천역에서 내려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았다. 신 경사는 “욕구를 채우지 못한 성추행범이 쉽게 자리를 뜰 리가 없다”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뒤이어 들어오던 열차의 붐비는 객차에 오른 A 씨는 한 여성의 몸에 자신의 몸을 밀착시키며 추행을 시작했다. A 씨는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비슷한 시각, 봉천역 승강장에서 눈치를 살피다 한 여성을 본 뒤 황급하게 열차에 오른 B(38) 씨는 서울대입구역쯤에 이르러 승객들이 객실에 들어차자 본색을 드러내 추행을 시작했다. 경찰이 다가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체포한다”고 하자 당황한 B 씨는 변명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순순히 이수역 지하철경찰대 사무실로 연행됐다. 최 경위는 피해 여성을 따라가 연락처를 건넨 뒤 경찰에서 피해 사실 진술 절차 등을 설명했다.

몰카범도 기승을 부렸다. 같은 날 오전 9시 50분쯤 서울 지하철 여의도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스마트폰으로 여성의 치마 속을 촬영하다 붙잡힌 회사원 C(25) 씨는 회사에 출근하는 대신 이수역 지하철경찰대로 끌려와 조사받았다.

최근 무더위 탓에 옷차림이 가벼워지면서 지하철 성추행범도 덩달아 활개를 치고 있다. 서울시내 지하철에 2인1조로 근무하는 지하철경찰대 20여 명은 오전 7시 30분부터 10시까지,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집중 단속을 벌인다. 아침 출근길에는 직장인이 많은 사당역·신도림역에서, 저녁 퇴근길에는 강남역·교대역 등에서 주로 단속에 나서고 있다.

이들이 쉴새 없이 ‘매의 눈’을 굴린다 해도 붐비는 객차 안에서 우연히 범행을 포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성추행범 검거의 승부는 승강장에서 갈린다는 것이다. 승강장부터 여성 뒤에 바짝 붙어 열차를 기다리거나 오가는 열차를 그대로 보내는 남성은 성추행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지하철경찰대가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피해자 진술이 꼭 필요한데 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경찰 관계자는 “추행이나 몰카 같은 지하철 성범죄는 중독성 때문에 되풀이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적극적인 수사 협조가 또 다른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근평 기자 istandby4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