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박재창/숙명여대 명예교수·행정학

종합적인 국민 고충 처리 기구가 처음 문을 연 것은 1994년의 국민고충처리위원회였다. 이를 기산하면 국민권익위원회는 올해로 출범 20주년이다. 사람으로 치면 성년(成年)이다. 우리나라의 국민 고충 처리 기구는 그동안 사실상의 정부 종합민원센터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데서 출발, 이제는 스스로를 국가 옴부즈맨으로 칭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적잖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한 셈이다. 그러나 기관 역사에 걸맞게 역할과 위상을 구축하면서 사회의 수요에 잘 대응해 왔는지에 대해선 아직 후한 점수를 주기가 쉽지 않다.

가야 할 길이 멀고 해야 할 일도 산적하다. 먼저 주목할 일은 국가 옴부즈맨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규제 개혁을 주창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만큼 행정 민원과 국민 고충이 크다는 얘기다. 단순히 왜곡된 정책이나 규제를 수정하거나 푼다고 해서 당장 개개인의 고충이나 민원이 줄거나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특히 ‘관(官)피아’ 같은 음성적 사다리를 타고 특정 이익집단의 배타적 이익을 보장하려는 국정 포획 현상이 만연해 있다면 두말할 나위 없다. 규제든 규제 개혁이든 정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왜곡돼 있는 잣대로 사회 관계를 규율하려 하는 경우 건강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균형 있게 보호되기는 어렵다.

더욱이 세상은 이미 소중화(demassifying) 시대 또는 분절화된 구조의 사회로 접어들었다. 정보사회의 도래 이후 사회 관계의 급변성·다양성·광역성이 강화되면서 획일적인 잣대로 집단이익을 결집하거나 조율하기는 참으로 어렵게 됐다. 공익(公益) 자체를 포착하기 어려울 만큼 공통의 이해관계 형성이 쉽지 않은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정부에 대해 실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국민 개개인으로서는 불만과 고충이 커지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우 국가는 더 이상 자신을 초이성적 판단의 주체로도, 무결점의 사려 깊은 의사결정자로도 자임할 수 없게 된다.

이런 모순의 시대,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유리되면서 타자화하는 사회에서는 국민 고충이나 민원의 발생을 더 이상 임시적·병리적·예외적 현상으로 봐선 안 된다. 이 시대의 본질이며 늘 있는 일이라고 인식하며 접근해야 한다. 국민 고충이나 민원의 해소 문제를 정부 운영의 핵심 과제 내지는 본질적인 책무 가운데 하나로 다뤄야 한다. 국가 기능에 대한 인식의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국가 옴부즈맨으로서의 국민권익위원회를 국정 운영의 중심축으로 간주하려는 시각 교정이 절실하다. 이런 시대 상황의 변화를 널리 알리고 국가 옴부즈맨 역할의 중요성을 설파, 확장하는 책무는 일차적으로 국민권익위원회에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이 이런 엄중한 시대적 소명을 얼마나 처절하게 절감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하고 성찰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국가 개조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가 높고, 이를 위해 정부 조직을 개편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보다 더 본질적인 국가 개조를 원한다면 이렇듯 시대 상황의 재인식, 국정 운영 철학의 교정, 정부 운영 중심축의 이동과 같이 국정 운영 양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줘야 한다. 지금까지의 국정 운영이 주로 투입이나 전환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었다면, 이제 그 과정의 완결성을 담보하기가 어려운 만큼 정부의 실패를 당연시하고 보다 더 환류 과정에 주목하는 쪽으로 국정 운영의 중심축을 이동하자는 것이다. 국정 운영 과정의 모순이 심한 시대인 만큼 그런 모순을 뛰어넘을 만큼 공감 능력이 뛰어난 국가 기구의 활성화가 보다 더 시급하다. 옴부즈맨을 새롭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