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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변질되기 마련인데, 1970∼1980년대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그 훼손 속도가 가속화되는 걸 걱정했지요. 사진과 그림으로 최대한 ‘현재’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조선왕릉 45기를 두 발로 돌아다니며 연필 세밀화 200여 점을 남긴 은광준(69·사진) 구리문화원 전문위원이 30일 문화재청장 표창을 받았다. 조선왕릉 세계문화유산 등재 5주년 기념 보존·관리와 연구분야 유공자로 인정받은 것.

은 위원은 지난 1973년 문을 연 세종대학교박물관의 개관멤버다. 2006년 3월 학예연구실장으로서 은퇴할 때까지 30여 년을 근무했으니, 국내 박물관계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80년대 초부터 조선왕릉에 ‘꽂혀’ 세밀화를 그리기 시작한 그는 “되도록 선배나 동료 연구자들이 안 하는 걸 하려고 했다. 요즘 표절이다 뭐다 시끄러운데 남들이 한 거 따라하면 뒤처지기밖에 더하겠냐”고 전했다. 그는 “왕릉을 테마로 잡아 사진을 찍고, 탁본을 뜨다가 결국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덧붙였다.

오랜 시간 묵묵히, 독자적인 방식으로 문화유산 연구에 헌신한 은 위원은 숭례문 부실공사 논란 이후 연이어 비리가 적발되는 문화재계에 귀감이 될 만하다. 세종대박물관을 떠난 후에도 연천선사박물관 선임연구원, 궁정고전연구소 연구원, 전쟁기념관 자원봉사원으로 활동하는 등 요즘도 문화·역사교육 활성화에 힘쓰는 은 위원을 만났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시상식이 끝난 직후였다.

은 위원이 조선왕릉 연구를 본격화한 건 1970년대 말. 답사를 다니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다 왠지 모를 ‘부족함’을 느꼈고, 미대(홍익대 공예학부 졸업) 출신이라 그랬는지 자연스럽게 연필을 들게 됐다. “세밀화를 그리다 보니 문(文)·무인석(武人石·왕릉을 지키는 석조물)의 특징이 더 잘 보였어요. 비바람을 맞아 풍화된 앞모습, 완벽하게 남아있는 뒷모습, 칼집의 위치에 따른 조각가의 실수,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표석의 형태까지….”

학예사 시절에도 박물관의 디자인 관련 작업을 도맡아 했던 은 위원은 세밀화를 그리면서 각 표석의 디자인적 특징도 분석했다. 예를 들어 의릉(懿陵) 경종계비 선의왕후 문석에는 조선왕릉 석물 중 유일하게 ‘호피무늬’가 화려하게 덮여있다. 현릉(顯陵) 현덕왕후와 희릉(禧陵) 장경왕후의 문석에서는 홀(笏·관복을 했을 때 손에 든 수판)과 턱 사이가 뚫린 투각기법이 보인다. 또 조각가의 취향과 시대상에 따라 석물 형태가 달라지는데 은 위원은 “고종황제 무인석은 날씬하고 호리호리하다”며 “중국의 것을 따라한 느낌도 있다”고 설명했다.

은 위원은 30년의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조선왕릉석물지(상·하)’ ‘조선왕릉석물복식’ ‘서울600년사’ ‘한국의 석조문화’ ‘태조고황제건원릉’ 등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이 중 2010년 민속원에서 발행한 ‘조선왕릉석물복식’은 조선을 창업한 태조의 건원릉(健元陵)부터 제27대 순종효황제가 묻힌 유릉지(裕陵址)까지 망라했다. 사진에는 담을 수 없는 옷선의 윤곽과 볼륨을 그림으로 기록했고, 세월의 비바람으로 마모된 부분까지 점묘기법으로 살려 매우 정밀하다는 평을 듣는다. 게다가 묘호(廟號)를 받지 못한 연산군, 광해군까지 포함해 학술적 가치도 높다.

책에는 북한 개성지역에 있는 제릉(齊陵·태조고황제원비 신의고황후)과 후릉(厚陵·제2대 정종·비 정안왕후)의 모습도 담겨있다. 은 위원이 2000년대 초반 학술교류로서 개성을 방문했을 때 찍어온 것으로, 어려운 제약 조건 아래서도 두 능을 카메라에 담고, 세밀화를 그리는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왕릉을 향한 ‘무한애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은 위원은 곧 강원 영월에 탄광촌 폐교를 활용한 ‘조선왕릉박물관’을 설립할 예정이다. 그는 “가족들까지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조물주가 내게 준 솜씨를 계속 활용하고 싶다”고 전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사진 =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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