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대지를 위한 바느질’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작업 중인 친환경 웨딩드레스를 살펴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munhwa.com

결혼식 시즌인 4월 화려한 웨딩드레스는 결혼식에서 신부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는 가장 중요한 아이템이다. 하지만 단 한 번의 화려함을 위해 태어났다 금방 버려지는 웨딩드레스는 1년에만 170만 벌. 합성섬유로 만들어지는 웨딩드레스는 결국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친환경 웨딩스레스를 제작하는 사회적기업이 있다.

24일 방문한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대지를 위한 바느질’(대표 이경재)사무실에는 제작 중인 웨딩드레스 여러 벌이 예비 신랑·신부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겉보기엔 일반 드레스와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한지 섬유로 제작해 땅에 묻으면 3∼4일 안에 자연으로 돌아간다. 친환경 의류라고 하면 품질이 떨어지거나 우중충한 디자인일 거라는 부정적 느낌을 갖게 될 수 있지만 대지를 위한 바느질에서 만난 웨딩드레스는 이런 고정관념이 우습도록 아름답고 세련됐다.

웨딩드레스를 직접 사는 경우에는 한 번 입고 버리는 경우가 많다. 대여 업체의 경우에도 많아야 3∼4번 정도 빌려주고 나면 때가 타거나 폼이 나지 않아 폐기해야 한다. 일반적인 웨딩드레스는 합성섬유로 만들어져 땅에 묻어도 썩지 않는다. 매년 170만 벌이나 되는 웨딩드레스들이 소각 처리돼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8년부터 ‘친환경 드레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6명의 직원은 모두 디자이너 출신으로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디자이너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이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에코(친환경) 결혼식은 우리나라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오가닉 코튼, 천연염색, 옥수수 전분 섬유, 천연 한지 섬유, 천연 쐐기풀 섬유 등 친환경 재료를 이용해 세상에 하나뿐인 웨딩드레스를 만든다’는 아이디어가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다.

결혼 성수기인 4∼5월에는 한 달에 문의가 200∼300건 정도 들어온다. 소규모 사회적기업이기 때문에 물량을 다 소화하기는 어렵고 일주일에 6벌 정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친환경 드레스뿐만 아니라 콩기름으로 인쇄한 청첩장, 뿌리를 자르지 않은 식물로 만들어 예식 후 화분에 심을 수 있는 부케와 부토니아(남성 턱시도 좌측 상단에 꽂는 꽃), 꽃과 허브를 살아있는 그대로 화분에 담은 꽃 장식, 유기농 식재료를 쓴 피로연 음식과 하이브리드 웨딩카 등을 제공하며 진정한 에코 결혼식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지난해 9월 제주도에서 소박한 결혼식을 올린 가수 이효리·이상순 부부의 결혼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서면 상담서에 적힌 이름을 보고 의뢰인이 이들 부부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이 대표는 “비싼 드레스와 값비싼 음식 없이 치러진 결혼식이었지만 어떤 결혼식보다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같은 해 한국 최초의 동성연애 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 감독 부부 역시 대지를 위한 바느질을 통해 결혼식을 올렸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친환경 결혼식에서 더 나아가 ‘마을 결혼식’을 진행한다. 이 대표는 “요새 강남 안 거치고 하는 결혼식이 없을 정도로 그 지역에 웨딩업체들이 집중돼 있다”며 “굳이 강남까지 가지 않아도 동네에서 멋진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고 마을 결혼식의 취지를 설명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성북구청에서 진행한 마을 결혼식은 대지를 위한 바느질에서 웨딩드레스를 제작했고, 구청 강당을 조명과 꽃으로 멋스럽게 장식했다. 동네 미용실과 메이크업숍에서 치장을 했다. 동네 떡집, 만두집, 갈비탕집 등에서 결혼 피로연 음식을 주문했다. 피로연 장소도 성북구청 옥상이었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웨딩드레스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유니폼, 병원복 등을 제작하기도 한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강남 3군데 병원에 천연소재로 만들어 건강하면서도 멋스러운 병원복을 디자인해 납품했다. 의정부시청, 수원시 기후변화 체험관, 성북구청 보건소 등의 유니폼을 제작하기도 했다.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하는 동시에 기존의 딱딱하고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의 틀을 깨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고용노동부로부터 바람직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으로 인증받기도 했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친환경 제품 생산에 그치지 않고 사회공헌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다문화가정의 친환경 결혼식을 직접 진행해주고 어린이들에게 환경 교육을 하는 데 수익 일부를 사용한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