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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대기업 임원에서 퇴직한 강모(59) 씨는 요즘 아내와 둘이 떠나는 여행에 맛을 들였다. 남해안의 작은 섬에서 지리산의 골짜기까지 팔도강산의 경관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미처 몰랐다. 여행지에서 맛보는 산해진미도 강 씨 부부의 새로운 낙이다. 올 여름에는 TV 프로그램에 소개됐던 유럽으로 나서볼 생각이다. 아직 구체적 일정을 잡은 것은 아니지만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도 계획에 포함돼 있다.

강 씨는 꼬박 30년을 대기업에서 휴일도 없이 일하면서 주변에서 ‘워크홀릭’이란 얘기를 숱하게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을 작정이다. 최근에는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처분하고 경기 용인의 단독주택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알뜰살뜰 모아온 적금과 퇴직금을 합하면 예금도 상당하고, 국민연금 외에 본인과 아내 명의로 개인연금도 넉넉하게 준비해 놓았다. 금융회사 다니는 아들과 무용을 전공한 딸이 있지만 남은 재산은 상속하기보다는 자신과 아내의 남은 삶을 위해 아낌없이 쓸 생각이다.

강 씨와 같은 퇴직자들이 ‘액티브 시니어’로 불리며 한국사회의 새로운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의 능력과 경험이 경제동력으로 평가받고, 이들의 경제력은 소비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들의 결집이 선거의 판세를 좌우했을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도 막강하다. 젊은 시절에 열정과 패기로 ‘산업한국’을 건설했다면, 지금은 경륜과 경제력으로 ‘복지한국’을 누리고 있다.

◆ 한국경제의 새 동력 = 액티브 시니어는 퇴직 후에도 취업시장에서 각광받는 경우가 많다. 경험과 능력은 물론 인적 네트워크가 탄탄하기 때문이다. 공기업·대기업·공공기관에서 고위직을 지낸 경우, 중소기업에 최고경영자(CEO)나 고문으로 영입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기업 임원 출신의 강 씨도 퇴직 후 협력업체 회장직을 제의받았지만 고민 끝에 지인이 경영하는 회사의 비상근 임원직으로 재취업했다. 삶의 여유를 위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3월 현재 50대 고용률은 73.6%로 지난 2009년에 비해 3.3%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20대 고용률은 56.0%로 5년 전에 비해 2.2%포인트 줄었고, 30대 고용률은 73.0%로 1.7% 상승했지만 50대에 미치지 못했다. 현 정부가 목표로 하는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여성을 중심으로 50대 이상의 고용률을 더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실제 정부는 50·60대를 위한 다양한 고용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들을 한국경제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 정치의 중심 세력 = 정치 무대에서 액티브 시니어의 영향력은 더욱 두드러진다. 정치권의 대다수 인사들이 여기에 속할 뿐만 아니라 유권자의 중심이기도 하다. 최근의 대선·총선·지방선거가 액티브 시니어의 선택에 따라 판세가 갈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50대의 투표율은 82.0%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60세 이상이 80.9%로 뒤를 이었다. 반면 20·30대의 투표율은 70%를 밑돌았다. 2012년 4·11 총선의 경우에도 50대 투표율은 62.4%로 40대(52.6%), 30대(45.5%), 20대(41.7%)를 크게 앞섰다. 보수 성향의 50·60대의 결집이 선거 결과를 결정지은 셈이었다.

지금의 50대는 10여년 전 40대 시절에 대선에서 진보 쪽에 더 많은 표를 줬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정치적으로 보수 진영으로 결집한 이유에 대해서는 분석이 다양하다. 종북 성향을 보이는 진보 진영에 대한 실망과 노후에 대한 불안이 이들의 분노를 샀다는 해석도 나왔다. 분명한 점은 앞으로의 선거에서는 이들의 마음을 사지 않고서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S그룹 임원 출신의 김모(58) 씨는 “우리 세대는 이념적으로 보수나 진보로 규정하기보다는 헐벗고 굶주린 시대에 태어나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이라며 “이제는 그 동안의 희생에 대한 대가를 누리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고 말했다.

박영출 기자 ev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