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대 초반까지 폭발적인 증가세를 이어가던 국내 시민단체들이 최근 영향력 약화와 신뢰도 저하, 정치적 편향성 논란 등으로 뚜렷한 퇴조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내 시민단체의 절반 가량이 한 해 1억 원 미만의 적은 예산으로 운영되면서 만성적인 재정난과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어 한국 사회의 감시자 역할을 맡아온 시민운동의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 증가폭 주춤 = 30일 시민운동정보센터 등에 따르면 지난 1970년대 설립된 국내 시민사회단체는 94곳에 불과했다. 1980년대 들어 경제성장과 맞물려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시민단체 역시 급증하기 시작해 1980~1989년 10년 간 모두 354개의 단체가 설립됐다. 1990년대에는 그 수가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해 1140개의 단체가 생겨난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시민운동이 절정기를 맞은 2000년대에는 관련 단체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지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간 무려 5176개의 각종 시민단체들이 생겨나 활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확산 등으로 시민단체의 의제설정 기능이 급속히 약화됐고, 앞서 다수의 시민단체 소속 활동가들이 정치권에 뛰어드는 과정에서 정치적 편향성 시비마저 일면서 지지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 2000년대 매년 평균 500여 개씩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던 시민단체들은 지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간 846개가 새로 생겨나는 데 그쳤다.

◆재정난과 인력난 시달려 = 국내 한 시민단체에서 상근 활동가로 일해온 이모(37) 씨는 최근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이 씨는 “대학생 때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이후 시민단체에서 현장 활동을 하면서 보람도 느꼈지만 현실적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기 쉽지 않다”며 “이상과 목표만을 좇고 살기에는 감내해야 할 여건이 너무 열악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시민운동정보센터가 지난 2012년 1257개 시민단체의 예산을 분석한 결과 예산이 1억 원 미만인 단체가 43.6%인 545곳에 이르는 등 국내 시민단체들의 재정 여건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열악한 실정이다. 인력난 역시 심각해 209개 시민단체를 분석 결과 각 단체에서 실질적인 업무를 맡으며 관련 활동을 이끌어가는 상근 활동가 수가 10명 미만인 곳이 전체 분석 단체의 91.9%인 192곳에 달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시민단체의 영향력이나 신뢰도가 떨어지다보니 재정난과 인력난이 심해졌고 인력난 등으로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다보니 또 영향력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정부나 정치권 감시 등 시민단체의 순기능을 회복하거나 시민단체를 대체할 한국 사회의 다른 감시자를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병철 기자 jjangbe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