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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권/한국재정학회장,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 철폐를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사용하는 용어도 강하고, 규제개혁회의도 민·관 합동으로 바꾸는 등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과거 모든 정권은 초기엔 규제 철폐를 내세웠지만 대체로 실패했다. 근본적 이유는 규제 철폐를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보고, 경제적 합리성만을 따진 데 있다. 규제 철폐는 이해 당사자들의 철밥통을 깨는 정책이다. 따라서 규제 철폐를 성공하기 위해선 이해 당사자와 한판 승부를 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규제를 통해 이익을 보는 집단은 정치인과 관료들이다. 모든 규제는 정교한 논리로 뒷받침된다. 대표적으로 공공성 강화, 경제민주화 등을 들 수 있다. 공익(公益)을 위한다는 근사한 논리 뒤에는 이들 집단의 사적(私的) 이익이 숨어 있다. 정치인과 관료 입장에선 규제가 강할수록, 사적 이익이 커진다. 기업은 경제활동을 막는 규제를 피하기 위해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허리를 굽혀야 한다.

국회의원들의 경조사와 출판기념회에 돈봉투를 들고 열심히 얼굴도장을 찍어야 한다. 관료들에겐 합리적인 논리도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익을 위한다는 강한 논리로 규제를 강화할 뿐이다. 현직 관료를 움직이려면 그들의 선배인 전직 관료를 동원해야 한다. 그래서 민간에선 옷벗는 고위관료들을 고문 및 임원 자리에 앉히려 한다. 국제 경쟁시대에 기업은 생산 활동하기도 벅찬데, 규제 완화를 위해 로비 활동으로 생산 활동을 대체해야 한다.

정치인 입장에선 규제는 강화할수록 그들의 사적 이익을 더 키울 수 있다. 규제는 법과 제도로만 하는 게 아니다. 각종 인허가를 신청해도 받지 않으면 또 다른 규제가 된다. 이는 ‘행정 규제 기본법’에도 없는 ‘보이지 않는 규제’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 형식으로 구두지도, 행정지도, 권고 지침 등 다양하다. 기업 입장에선 보이는 규제보다 보이지 않는 규제가 더 힘들다. 보이는 규제는 잘못된 제도를 지적하고, 시정 요구하면 되지만, 보이지 않는 규제는 구체적인 제도가 아니므로 논리가 궁핍하고 설득력도 떨어진다. 특히 행정관청이 주민 반대를 이유로 인허가하지 않는 실질적 규제에는 기업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규제는 법에 의해 명시되는 것이 아니고, 주민 반대라는 ‘떼쓰는 법’ 형태로 어떠한 법령 위에 군림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수량으로 환산하는 규제는 대통령의 규제 개혁 호령에 따라 외형적으론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규제는 규제가 아니므로, 관료들은 얼마든지 대응논리를 내세울 수 있다. 대통령이 암 덩어리란 격한 용어를 내세워도 보이지 않는 규제를 없앨 수 없다.

규제는 공공성, 경제민주화 등이 사회적 관심사가 될 때 한층 강화된다. 현 정부는 1년 동안 경제민주화란 구호 속에서 허송세월했다. 또한 경제민주화란 명분으로 정치권에서 많은 규제 정책이 입안됐다. 이제 경제민주화에서 경제 혁신으로 정권의 깃발이 바뀌었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경제민주화란 논리를 통해 국민의 의식구조엔 규제 강화를 경제 약자를 보호하는 선한 정책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규제 개혁에 앞서, 경제적 자유와 성장이란 용어가 사회적 관심사가 돼야 한다. 그래야 규제 철폐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이끌 수 있다.

정치인과 관료들이 규제를 통해 사적 이익을 높이려는 행위를 도덕 문제로 치부해선 안된다. 누가 정치인과 관료가 돼도 똑같다. 결국 이들의 규모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 규제를 담당하는 관료들을 대폭 줄여야 한다. 그 과정에 약간의 공익이 침해당하더라도 차라리 규제 담당 부서를 대폭 줄이는 게 공익을 훨씬 더 키울 수 있다. 규제 철폐 정책은 작은 정부로 가는 정부 개혁과 동시에 추진해야 성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