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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픽션, 지금 세계는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가 / 이원재 외 지음 / 어크로스

‘다가올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만나고 싶은 미래’에 대해 다룬 책이다.

먼저 다소 생소한 ‘소셜픽션(Social Fiction)’의 개념부터. ‘사회적 상상’쯤으로 번역되는 소셜픽션은 노벨평화상을 받은 그라민은행 창립자인 무함마드 유누스(사진) 총재가 제안한 개념이다. 사전적으로 풀이해보자면 ‘사회에 대해 제약없이 이상적인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는 일’이다.

예를 들어 서울이란 도시의 문제 해결을 위해 수많은 개별적인 문제를 찾아내는 대신, ‘우리가 바라는 20년 뒤의 서울’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부터 과연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기획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상상을 하면 방향이 보이고 변화가 일어난다는 게 이 개념의 핵심이다. 소셜픽션을 제안한 유누스는 빈민들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고민하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은행’을 꿈꿨다. 그 상상을 바탕으로 가난한 이들을 돕는 그라민은행을 세웠고 수많은 빈민들이 이 은행의 도움을 받았다.

7명의 필자가 공동으로 집필한 이 책은 ‘오늘을 바꾼 어제의 상상’과 ‘내일을 바꿀 오늘의 상상’으로 나뉘어 있다. 독자들의 관심사는 과거의 결과인 오늘보다 오늘의 결과가 되는 미래일 테니 뒤쪽의 비중이나 볼륨이 훨씬 더 크다. 과거의 상상이 지금의 현실로 이뤄진 대표적인 사례로 저자는 유럽연합(EU)을 들었다. 프랑스의 코냑상인 출신인 장 모네 유럽철강공동체 최고행정기구 의장의 국가통합이란 비현실적인 상상은 결국 유럽경제공동체로, 다시 EU로 실현됐다는 것이다.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럽인들은 지금 유럽시민권과 EU 대통령을 꿈꾼다. 차별의 땅에서 자유와 평등을 꿈꿨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유럽 최빈국에서 최고의 복지국가가 된 스웨덴이 실현해낸 과거의 상상, 꿈과 상상으로부터 놓이기 시작한 제주 올레길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이런 다양한 상상이 참여와 연대, 시장원리를 통한 빈곤 극복, 사회문제 해결의 아이디어, 비효율을 제거하는 기술의 가능성 등 4가지 경제분야 현안으로 나뉘어 쓰였다.

내일을 바꿀 오늘의 상상의 사례는 훨씬 더 흥미롭고 다양하다. 예컨대 어쩌다 한 번 쓰는 망치와 버려질 때까지 사용되는 시간이 평균 15분에 불과한 전기드릴이 왜 집집마다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하는 공유경제의 상상이나,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활용한 직접투표 방식의 정책결정을 통한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 가능성 등에 대한 상상과 그 상상에 다가가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소셜픽션은 미래예측이 아니라 비전과 목표를 염두에 둔 ‘염원’인 만큼 적중도가 중요한 건 아니다. 저자는 소셜픽션의 대표적인 예로 드는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경제공황의 한복판에 있던 1930년에 쓴 에세이 ‘우리 후손들의 경제적 가능성’을 든다. 이 에세이에서 케인스는 100년 뒤(2030년)에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과 자본의 충분한 축적으로 인류의 경제적 능력이 8배가 늘어날 수 있다고 봤다. 생계를 위한 노동은 거의 필요없어지며 자아실현의 수단쯤으로 일을 나누면 하루 평균 3시간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시대’에는 경제적 이익보다는 지혜롭고 유쾌한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세상이 된다는 게 그의 예측이었다. 모든 것이 해소된 즐기고 사색하는 삶. 그러나 머지않은 미래에 그런 삶이 당도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분배나 환경 등 예측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얽히며 그의 소셜픽션은 빗나갔지만, 그의 상상은 우리의 사회적 경제적 삶이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가 상상한 미래의 꿈을 목표로 경제공황의 와중에도 미국과 유럽 정부는 노동권을 보호하고 사회인프라에 투자했으며 사회복지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미국 정부가 불황극복의 대안으로 밀고 나갔던 뉴딜정책도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스의 거시경제학의 이론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책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가’가 핵심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싶은 미래를 생각하는 과정 속에서 어떤 것이 우선 해결돼야 하는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게 한다는 게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상상 속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희망을 찾는 소셜픽션의 방법을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개인적 성취 쪽으로 좁혀서 적용해보는 것에도 적잖은 참고가 되겠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