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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현대자동차의 신형 제네시스가 출시되면서 올해 국산차와 수입차 간 대형차 대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초반부터 빗나가기 시작했다.

연간 9만 대 가량인 국내 대형차 시장을 놓고 국산차와 수입차가 ‘제로섬(zero-sum·한 쪽이 득을 보면 반드시 다른 한 쪽이 손해를 보는 상태) 게임’을 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국산 및 수입 대형차 판매량이 모두 증가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신형 제네시스가 수입 대형차 시장을 잠식하기는커녕 오히려 판매량을 늘려주며 대형차 시장을 확대시키는 ‘밴드 왜건’(어떤 상품에 대한 판매가 증가하면 비슷한 다른 상품의 수요도 많아지는 현상) 효과를 낳은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을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소득 양극화 현상에 따라 대형 고급차 수요가 늘고 있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특성이 국내에도 반영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있는 반면, 이 같은 현상은 일시적일 뿐 국산차와 수입차 간 혈투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19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신형 제네시스는 3728대가 판매됐다. 구형 제네시스의 2013년 1월 판매량 1152대보다 223.6%나 증가한 것이다. 신형 제네시스의 ‘깜짝’ 실적 발표 이후 경쟁 차량인 BMW 5시리즈와 벤츠의 E클래스, 아우디 A모델의 판매량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벤츠 E클래스 1월 전체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106.4%나 늘어난 1548대에 달했다. 지난해 12월과 비교해 봐도 1029대에서 1548대로 50.4%(519대)가 증가했다. E클래스 대표 차종인 E220 CDI 모델은 576대가 팔려 전년 동월과 전달 대비 각각 77.8%, 78.3% 증가했다.

신형 제네시스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BMW 520d도 1월 809대가 판매되며 월간(단일 모델 기준) 수입차 판매 1위에 올랐다. 전달 대비 4% 판매량이 증가했다. 신형 제네시스의 판매 돌풍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편승효과를 누린 셈이다.

아우디 A모델의 1월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33.3% 늘어난 1921대를 기록했다. 대표 모델인 A6는 전년 동월 대비 57.2%가 늘어난 486대가 판매돼 신장세를 이끌었다. 그렇다고 재규어, 포드, 렉서스 등 다른 대형 수입차 판매가 줄어든 것도 아니다. 재규어와 포드의 1월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80.6%, 37.9% 증가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전자산업팀장은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 저소득층은 수입이 줄었지만 고소득층은 수입이 더 많이 늘면서 전 세계적으로 대형 고급차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신형 제네시스 출시를 계기로 이 같은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BMW의 지난해 글로벌 판매량은 2012년 대비 7.5% 늘어난 165만 대로 역대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고, 벤츠도 2012년 대비 10.7% 증가한 146만 대를 판매했다.

벤츠는 고급차 시장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에 대비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만 생산하던 미국 공장에서 세단인 C클래스를 생산하기로 했다. BMW는 브라질에 신규 공장을 건설 중이며 아우디는 중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국내 대형차 시장 확대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신형 제네시스 출시를 기다려 왔던 대기 수요로 대형차 시장이 일시적으로 늘어났을 뿐 대형차 시장 기반이 확대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특히 올해 신형 제네시스 국내 판매 목표량을 3만2000대로 설정한 현대차의 경우 대형차 시장 확대라는 낙관론에 대해 경계감을 표시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1∼3월까지는 대형차 시장이 확대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겠지만 6월 이후에는 브랜드별 판매량 격차가 확연해지면서 승부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대형차 시장에서 수입차는 5만여 대, 국산차는 3만여 대가량 판매됐다.

유병권 기자 yb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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