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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성인연극’을 표방하는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지난 4일부터 오는 3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헤르메스’(사진)다. ‘성인연극’이라고 하면 대부분 ‘야한’ 연극을 떠올릴 것이다. 출연배우가 옷을 벗고, 성애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연극 말이다. ‘헤르메스’ 역시 이 같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순전히 ‘야한 장면’만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는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연극 ‘헤르메스’는 야하되 진지한 작품이다. ‘성인연극’을 소재로 한국사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명품’이란 수식어를 ‘성인연극’ 앞에 붙였을 게다. 연극 ‘이(爾)’의 극작가 김태웅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작·연출을 맡았다. 이승훈·김영필·강말금·이안나·김유진·이한님 등 출연배우들도 대학로에서 정극 배우로 ‘잔뼈가 굵은’ 이들이다. 단순히 관객을 ‘꼬시려고’ 옷을 벗는 배우들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 연극 ‘헤르메스’는 어디가 야하고, 어떻게 진지한 것일까. 우선 줄거리를 따라가 보자. 주인공 남건은 한때 노동운동을 했지만 지금은 돈을 벌 목적으로 성인연극을 만들고 있다. 그는 대본을 쓰고 연출도 하면서 직접 출연하는 등 제작 전반에 관여한다. 성인연극으로 돈을 번 남건은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호텔에 투숙하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긴다. 그런 와중에 같이 무대에 서는 여배우 유가인이 개런티 인상을 요구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예전에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선배가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고 애걸해도 냉정하게 묵살한다.

남건은 점차 돈의 노예가 되어가면서 자신이 더러워지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여자를 돈으로 사서 자기 몸에 오줌과 똥을 싸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한다. 한편 유가인의 남동생이 누나의 공연을 보고 충격을 받아 자살하지만 남건은 공연이 취소되는 것을 더 걱정한다. 그는 출장안마사 유정숙을 통해 순수한 세계를 경험하고, 그녀에게 자신의 추악함을 고백하기도 한다. 남건의 자기분열적인 행태는 결국 파국을 맞는다.

줄거리에서 감지되듯 연극은 남녀 간의 성애 장면을 곳곳에 배치해 놓았다. 몸을 사리지 않는 출연배우들의 열연으로 객석은 후끈 달아오른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곧 장면은 뒤바뀌고, 주인공이 처해 있는 상황의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돈을 추구하면 할수록 점점 더 자기 자신과 멀어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스스로 ‘그럼 나는’ 하고 되묻게 된다. 02-3676-3676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