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이노시뮬레이션 연구실에서 조준희(뒷줄) 대표와 직원들이 터키 철도청(TCDD)으로 수출된 철도차량 조종훈련 시뮬레이터를 시험 가동하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이것이 지난해 터키 철도청(TCDD)에 수출된 철도차량 조종훈련 시뮬레이터입니다. 기관사 면허시험을 보거나 안전 상황을 점검할 때 사용되는 것이어서 터키의 철도안전을 우리 회사가 책임지고 있는 셈이지요.”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이노시뮬레이션 사옥에서 만난 조준희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철도 차량 조종훈련 시뮬레이터를 가동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시뮬레이터 8개의 컴퓨터 모니터에는 전동차의 내부와 계기판, 철로에서 운행 중인 전동차의 모습이 극명하게 보였다.

“비상상황을 가정해보자”는 조 대표의 말이 떨어지자 시뮬레이터 모니터에는 가상 철로의 신호등이 빨간불로 변경됐고 달리던 기차의 기관실에 이 같은 명령이 전달됐다. 기관실에선 즉시 기관차의 비상정지 기능이 작동됐고 1분여가 지나 기관차가 완전히 멈췄다.

조 대표와 직원들은 이 같은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기관차의 비상정지 및 긴급조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살폈다. 이 시뮬레이터는 터키의 전동차와 1500㎞에 달하는 철도노선을 완벽히 재현해 내며 터키의 기관사 인력 양성과 철도의 안전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노시뮬레이션이 이처럼 터키의 철도환경을 재현하는 데엔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일반인들이 생각했을 때 시뮬레이터는 컴퓨터 레이싱 게임과 제작 과정이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시뮬레이터 제작에는 훨씬 더 정교하고 복합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전동차 조종훈련 시뮬레이터의 경우 먼저 컴퓨터 도면에 3차원으로 전동차와 철로를 모두 그리는 것으로 작업이 시작된다. 이후 이 그림들이 언제 어떻게 등장할 것인지를 수학적으로 정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다음으론 그림들이 빠르고 부드럽게 나타날 수 있도록 요소기술과 인공지능을 대입한다. 이 과정을 모두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영상엔진을 통해 모니터로 가상의 환경이 재현되는 것이다.

올해로 창립 14주년을 맞은 이노시뮬레이션은 국내 가상훈련 시뮬레이터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벤처기업이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 영국을 비롯한 세계 18개국에 연구용 시뮬레이터와 철도차량 시뮬레이터를 수출하고 있으며 지난해 기록한 매출 100억 원 중 45%를 해외에서 거뒀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시뮬레이터와 첨단 제어기술 분야 특허와 실용신안만 10건에 달할 정도이다.

하지만 조 대표는 “세계적인 항공기 시뮬레이터 제작업체인 캐나다 CAE의 매출은 연간 2조 원”이라며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는 “시뮬레이터는 기계와 컴퓨터, 전기공학 등 다양한 기술이 필요한 대표적인 융복합산업이고 적용대상에 따라 국방과 레저 등 다양한 분야로의 사업확장이 가능한 유망산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시뮬레이터 산업이 발전할 경우 앞으로 고용창출 효과도 상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례로 이노시뮬레이션 전 직원 65명 중 절반은 기계공학 전공자이고, 20%는 컴퓨터공학, 10%는 전기공학 전공자다. 시뮬레이터 제작과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심리학 전공자와 교육학 전공자도 있다.

곽은진 경영혁신팀장은 “제작 인력도 중요하지만 시뮬레이터를 운영하기 위해선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직원들도 필요하다”며 “이렇듯 다양한 인적 구성을 통해 창출되는 시너지 효과가 우리 회사의 최대 강점”이라고 소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가상훈련 플랫폼 산업을 비롯한 융복합산업이 앞으로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창출해 경제발전을 이끌 수 있는 분야라고 판단해 적극 육성키로 했다. 산업부는 지난해 12월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4회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서 4대 분야 13개 대형 융합과제가 포함된 ‘제6차 산업기술혁신계획’을 확정하고 앞으로 10년 동안 15조 원 이상을 투입하기로 했다.

4대 분야 13개 대형 융합과제는 시스템산업 분야에서 웨어러블 스마트디바이스, 자율주행자동차, 고속 수직이착륙 무인항공기시스템, 극한환경용 심해 해양플랜트, 첨단소재 가공시스템, 국민 안전·건강 로봇 등 6개, 창의산업 분야에서 개인맞춤형 건강관리시스템, 나노기반 생체모사 디바이스, 가상훈련시스템 등 3개, 소재부품산업 분야에서 탄소소재(플라스틱 기반 수송기기 핵심소재), 첨단산업용 비철금속 소재(티타늄 소재) 등 2개, 에너지산업 분야에서 고효율 초소형화 발전시스템, 저손실 직류 송배전시스템 등 2개다.

노기섭 기자 mac4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