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욤비 토나(오른쪽) 광주대 교수가 지난 18일 광주 남구 진월동 광주대 행정관 세미나실에서 ‘난민’을 주제로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있다. 광주 = 김낙중 기자 sanjoong@munhwa.com

욤비 토나(46)

광주대 자율·융복합전공학부 교수는 1967년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소수 민족의 왕족으로 태어났다. 그는 국립 킨샤사대 경제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의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콩고비밀정보국(ANR)에서 일하던 중 조셉 카빌라 정권의 비리(정부군과 반군의 은밀한 거래)를 알아채고 이 정보를 최대 야당인 민주사회진보연합에 전달하려다 체포됐다. ‘국가기밀유출죄’로 비밀감옥에 수감돼 갖은 고초를 겪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그는 지난 2002년 한국에 들어와 난민 신청을 했다. 인쇄공장, 사료공장, 직물공장을 전전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는 난민신청이 불허되고, 이의신청마저 기각돼 한때 좌절하기도 했지만 행정소송까지 가는 노력 끝에 2008년 난민으로 인정받았으며 이후 학업을 이어가 성공회대에서 아시아비정부기구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각종 강연 등을 통해 한국 사회에 국제 난민 문제와 콩고의 인권 문제를 알리는 데 앞장서온 그는 마침내 광주대 조교수로 임용돼 올 2학기부터 강의를 맡았다.

굴곡진 인생 역정을 거쳐 한국에서 새 삶을 개척한 토나 교수를 지난 18일 그의 연구실이 있는 광주대 행정관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때론 영어를 섞어 말하기도 했다.

학교 얘기에 앞서 그에게 가족의 안부를 묻자 곧바로 한국어 대답이 돌아왔다. “학교에서 얻어준 아파트(138㎡)에서 불편함 없이 살고 있습니다. 저와 가족들이 좋아하는 김치도 (김혁종)총장님이 2주에 한 번씩 보내줘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광주대는 통상 외국인 교수에 대해 66㎡ 남짓한 교내 기숙사를 제공하고 있으나, 토나 교수의 경우 부인과 2남2녀의 자녀 등 여섯 명이 살기에 비좁아 학교 인근의 아파트를 임차해 제공했다고 한다.

토나 교수는 “1주일에 한두 번은 집에서 콩고 음식을 해먹지만 우리 부부만 먹는다”며 “아이들은 한국음식에 길든 탓인지 콩고식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은 집에서 콩고어(링갈라어·키콩고어), 프랑스어, 영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를 섞어 쓴다.

그는 “큰아들 라비(14)는 중학교 1학년, 둘째 아들 조나단(13)은 초등학교 6학년, 큰딸 파트리샤(11)는 초등학교 5학년이고 한국에 와서 낳은 막내딸 아스트리드는 이제 두 살이 됐다”며 “박지성 같은 축구선수가 되고자 했던 라비는 이제 영화제작 쪽으로 꿈을 찾고 있다. 조나단은 목사가 되고 싶어하고 파트리샤는 꿈이 자주 변하는데 요즘엔 경찰관이 되고 싶은가 보다”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화제를 학교 강의로 돌렸다. ‘올 2학기에 무슨 과목을 가르쳤느냐’는 질문에 토나 교수는 “교양과목인 ‘현대사회와 인권’ ‘국제사회와 난민’ 등 두 과목을 가르쳤다. 수강생은 각각 38명과 53명이다. 강의는 1주일에 모두 4시간 했다”고 소개하며 처음에는 학생들이 자신의 수업 스타일을 힘들게 따라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나는 수업 때마다 1쪽 분량의 에세이를 써오도록 한다. 그리고 수업 때는 반드시 학생들에게 질문을 시키고 그룹별로 발표하도록 한다. 그런데 학생들은 여러 사람이 있는 데서는 질문을 안 하고 나중에 이메일을 통해 질문을 많이 하더라. 그러면 나는 ‘수업 시간에 질문 안 하면 그레이드(학점) 없다’고 말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두 과목 모두 이미 종강을 한 토나 교수는 수업 스타일을 궁금해하는 기자를 위해 이날 학교에 남아 있던 학생 10여 명을 모아 실제 수업을 시연하는 성의를 보였다. 그는 강의할 때도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썼다. 그가 학생들에게 “난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느냐”고 묻자 한 학생이 “가난하고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이라고 대답했고, 그는 “그게 다가 아니다. 난민은 내전으로 인해 많이 생기고 반정부 활동을 하다 망명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토나 교수 자신이 수백만 명이 희생된 콩고 1·2차 내전(1996∼2003년)을 직접 겪은 당사자여서 그의 강의는 학생들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듯했다. 그는 “한국의 경우 지금까지 5300여 명이 난민 신청을 해 324명 만이 인정받았다. 한국은 난민 인정을 잘 안 하는 나라에 속한다”며 문제의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는 대학교수가 된 이후에 국내 유수 대학과 시민·인권단체, 법무부 등으로부터 인권·난민 관련 강연 요청을 예전보다 훨씬 많이 받는다. 관련 분야 논문을 쓰려는 전국의 대학생 및 대학원생들로부터 문의전화 및 이메일이 쇄도하고 있고, 약속 없이 연구실로 들이닥치는 학생들도 많다고 한다. 토나 교수는 “지난달에는 235곳(개인 또는 기관)에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몸이 몇 개라도 그 많은 요청을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도 그는 유럽·미국 등지에 본부를 둔 인터넷 라디오방송국에서 콩고의 인권 문제에 관한 토론 요청이 오면 새벽 시간대에도 출연하는 등 콩고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토나 교수의 조국 콩고민주공화국(수도 킨샤사)은 서쪽에 인접해 있는 콩고공화국(수도 브라자빌)과는 다른 나라다. 콩고민주공화국은 벨기에의, 콩고공화국은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각각 받다가 1960년 함께 독립했다.

토나 교수의 명성은 외국 대학에서도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다. 특히 영국 옥스퍼드대 난민연구센터는 그에게 내년 4월 난민 문제와 관련한 발표를 해달라고 최근 초청장을 보냈다. 그는 “내가 옥스퍼드에 갈 수 있는 것은 대학교수가 됐기 때문”이라며 “교수직은 나에게 딱 맞는 일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많은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 같아 참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일들을 통해 난민들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기쁘다”고 밝혔다.

토나 교수는 콩고민주공화국이 정치적으로 안정 되면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강하게 비쳤다. 그는 “민족과 나라를 구할 수만 있다면 어떤 일도 할 각오가 돼 있다”며 “특히 국민의 60%가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는 콩고에 돌아가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칭찬한 한국식 교육을 적용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나타냈다.

그는 한국의 난민 정책과 관련,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올해 발효)을 만든 한국정부에 감사드린다”며 “한국에 있는 난민들에게 충분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이 자기 나라에 돌아가 한국에서 배웠던 기술, 문화 등을 조국을 변화시키는 데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 = 정우천 기자 sunshin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