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중음악계는 ‘관록의 검증’ ‘힙합 돌풍’ ‘신인의 도약’이란 키워드로 정리된다. 아이돌 그룹 위주의 댄스와 발라드가 거센 힙합 열풍에 밀려 주춤세로 돌아섰고, 조용필을 필두로 한 중견 가수들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 빛난 한 해였다. ‘빠빠빠’의 크레용팝, ‘으르렁’의 엑소 등 특이한 조합과 이미지의 신인들이 무섭게 질주하며 가요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돌풍의 주인공들이 일으킨 논란도 적지 않았다. 힙합계에선 때 아닌 ‘디스(Diss·힙합 음악계와 동료 래퍼들을 공개 비난하는 것)’전이 벌어져 추악한 싸움으로 번졌고, 크레용팝·아이유·프라이머리·로이킴 등 신인과 인기 스타들의 표절 논란이 거세게 일어 네티즌의 뭇매를 맞았다. ‘음원 사재기’ 의혹 등 디지털 음원 시장을 둘러싼 정부와 업계의 개선 움직임, 독점구조인 음악저작권신탁관리업무 분야에 새로운 음악저작권 단체의 설립 등 음악 시장 구조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 중견가수들의 ‘명불허전’= 영화 ‘라디오스타’에서 조용필은 ‘퇴물 가수’로 취급당했지만, 올해 조용필의 활약은 ‘신드롬’ 수준을 방불케 했다. 19집 ‘헬로’의 수록곡들이 전 세대에 걸쳐 조명받으며 음원과 음반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조용필의 뒤를 이어 나온 이승철·신승훈의 새 음반도 과거에 머물지 않고 신세대와 어울리는 미래 지향적 음악 세계를 선보여 ‘관록의 힘’을 보여줬다. 이적의 새 음반은 매력적이고 대중적인 선율의 힘으로 12월 거리 곳곳을 ‘점령’했다. 27년 만에 새 음반을 내고 활동에 나선 들국화도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찬사를 얻었다. 조용필과 이적의 신곡은 몇 년째 아이돌 음악의 성지로 불린 지상파 음악 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이 연출되기도 했다.

◆ 시선 집중시킨 신인들의 ‘신선도’= 뻔한 구성의 식상한 음악 패턴으로 승부해온 기존 아이돌 그룹과 차별화를 내세운 신인들이 가파르게 대중음악계 중심축에 파고들었다. 트레이닝복에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나타난 걸그룹 크레용팝의 ‘빠빠빠’가 신나는 댄스 리듬과 ‘직렬 5기통’ 춤으로 순식간에 ‘국민송’의 이미지를 획득했다. ‘제2의 강남스타일’로 화제를 모았고, 세계 진출을 위해 소니뮤직과 손을 잡기도 했다. 보아, 동방신기 등이 소속된 SM엔터테인먼트가 발굴한 올해의 대어는 엑소다. 한국(엑소케이·6명)과 중국(엑소엠·6명) 진출을 위한 팀을 따로 구분해 하나로 뭉친 독특한 조합의 엑소(12명)는 첫 정규 음반을 100만 장 가까이 팔아치우며 무서운 질주를 시작했다.

◆ ‘대세’로 떠오른 장르 ‘힙합’= 지난해까지 힙합은 변방의 장르로 머물렀으나, 올해 힙합은 상한가를 쳤다. 인기 가수들이 음반을 낼 때마다 피처링으로 힙하퍼가 나서지 않는 경우를 찾기 힘들 정도로 랩은 필수 양념으로 들어갔다. 또 힙합 뮤지션들이 낸 음악은 음원 차트에서 상위권에 맴돌며 주류 음악임을 증명했다. 다이나믹 듀오, 버벌진트, 산이, 범키 등이 그 주인공. 특히 공연 시장에서 힙하퍼의 무대는 차고 넘쳤다. 단독 콘서트 무대는 물론, 힙합 페스티벌이 잇따라 열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비판까지 들을 정도였다. 힙하퍼들은 예능 프로그램까지 진출해 독특한 입담과 끼를 선보였다. 그들의 존재는 현재 ‘섭외 0순위’에 오를 만큼 독보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날린 ‘홈런’만큼 당한 ‘삼진’ 타자들 = 인기가 집중된 힙하퍼와 신인들이 특히 심한 타격을 입었다. 언더 힙하퍼 스윙스의 랩으로 촉발된 ‘힙합 설전’은 게임전에서 폭로전 양상으로 번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음악에 대한 공격을 넘어 인신 공격 수준으로 치달은 디스전은 어떤 진실도 밝혀내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대세’로 가는 신인들의 길목을 가로막은 건 ‘표절 시비’였다.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극우성향 사이트) 논란이 채 식기도 전에, 의상과 신곡(‘꾸리스마스’) 표절 시비로 곤혹을 치렀던 크레용팝, 데뷔 음반부터 표절 시비에 휩싸인 ‘슈퍼스타K’ 우승자 로이킴은 인기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국민 여동생’ 아이유와 ‘인기 작곡가’ 프라이머리도 수록곡 표절 시비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음원 시장’에 대한 작은 변화들 =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의 저작권 사용료 징수 방식이 정액제에서 종량제로 바뀌었다. 스트리밍 1회 사용료 단가가 3.6원으로 책정된 것에 대한 업계의 불만이 가중됐지만, 종량제를 통한 저작권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개선책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됐다. 소문으로 무성하던 기획사들의 ‘음원 사재기’ 의혹에 대한 정부의 대책도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음원 사재기에 해당하면 저작권사용료 정산 대상에서 제외하고, 음악산업진흥법안에 음원 사재기 금지 조항 등을 신설 추진한다는 내용의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음원저작권에서 독점 지위를 가졌던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 경쟁 체제를 도입하기 위해 새로운 음악저작권 단체가 탄생한 것도 의미 있는 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고금평 기자 dann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