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시사잡지 뉴스위크 일본판의 10월호 표지. ‘반일한국의 망상’(일본을 반대하는 한국의 망상)이라는 제목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은 국내서도 크게 인기몰이를 했다. ‘진격의 ○○’식의 다양한 이름으로 변용되며, 각종 개그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됐다. 한 케이블 TV에서는 이를 토대로 한 애니메이션을 방영했다. 누적 판매 부수는 50만 권(일본 2000만 권)을 넘어섰다. 만화로는 드물게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랭크되기도 했다. 제목 그대로 ‘진격’하던 이 만화는 최근 국내 인기 상승세가 주춤하다. 이유는 원작자 이사야마 하지메(諫山創)의 우익 성향 때문이었다. 이사야마는 얼마 전 트위터를 통해 “일본 통치로 조선인의 인구와 수명이 2배 늘었다”고 밝혔다. 일본 우익 세력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유사하다. 이후 ‘진격의 거인’은 대해부의 과정을 겪었다. 평론가들은 “작품에 일본 우익 세계관이 담겨 있다”고 했고, 네티즌들은 불매운동을 벌였다. 정치인의 과거사 망언보다 만화 작품 하나가 더 큰 파장을 일으켰다. 대중 매체의 힘이다. 김민규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최근 일본 내 혐한 정서가 대중매체를 타고 급속하게 확산되며 왜곡된 역사가 일반 대중들에게 전달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 혐한류(嫌韓流)의 계속된 인기 = 이사야마의 우익성향이 드러나면서, 다시금 혐한 정서를 담은 일본 만화 작가들의 작품이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방문한 도쿄(東京) 신주쿠(新宿)의 대형서점 기노쿠니야 2층, 한국전문 서가에는 일본 대표 혐한 작가인 야마노 샤린(山野車論)의 만화 ‘혐한류’가 버젓이 꽂혀 있었다. 이 책은 이미 4권까지 총 누적판매 부수가 90만 권을 넘어섰다. 일본 우익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것은 물론이고, 독도를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재일한국인을 폄하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역시 “사실이 아니다”고 말한다.

특히 표지에서 이미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만큼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기본적으로 한국인을 비하하고 있어서 더욱 불쾌해진다.

만화는 평범한 일본 대학생들이 ‘한국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리는데, 냉철하고 이성적인 일본 학생과 쉽게 흥분하고 자기 말만 계속 해대는 재일한국인이 대결하는 구도다. ‘똑똑한’ 일본 학생은 논리적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예의 바르게 토론에 임하는 반면, 재일한국인은 모든 것에 폭력과 감정을 앞세운다.

◆ 잡지마다 ‘한국 특집’… 비하·비난 = 기노쿠니야 1층 잡지 서가에는 일본어를 잘 모르는 한국인이라도 누구나 쉽게 최근 일본의 이슈가 한국 비하와 비난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면 배치된 시사잡지의 표지마다 ‘한국(韓國)’이 등장한다. NHK 방송국 국제부 기자에 따르면 일본의 주요 주간지들은 지난여름 한·중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한·중 비난 기사를 싣기 시작하더니, 10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석 달 만에 재회하자 앞다퉈 ‘특집호’를 냈다. 그는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고립되는 듯한 일본의 불안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뉴스위크 일본판 10월호의 표지는 박 대통령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731부대 표시가 있는 비행기에 타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사진의 제목은 ‘반일한국의 망상’. 이 잡지는 장장 12페이지에 걸쳐 박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며 “과격화하는 한국의 반일 심리가 우려스럽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또 기사는 “반일 심리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듯한데, 커다란 지각 변동처럼 ‘새로운 반일시대’가 오고 있다”는 우려감을 표출했다.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와 위안부 관련 망언, 역사 교과서 왜곡 등 숱한 원인 제공을 일본 측에서 하고도, 마치 한국의 반일 심리를 ‘한국인이 비정상적이라서’ 나타난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였다.

윌(Will) 11월호는 아예 한국을 폄하하는 어조의 ‘이런 나라, 한국’이라는 제목의 ‘총력 대특집’ 기사를 게재했다. 주된 내용은 ‘한국멸망론’(총 10페이지)과 ‘삼성 분석’(22페이지), 그리고 반일, 화병, 네티즌 등을 키워드로 한국은 매우 이상하고, 경제가 위험하기 때문에 곧 망할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한국 비하와 비난에 절반 분량을 소진한 책은 나머지 절반에 ‘일본을 다시 일으켜 세우자’는 주제로 글을 실었다.

◆ 교육법 개정한 아베, 교육도 ‘우경화’ = 일본은 중고생들이 보는 교과서를 통해 또 한번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미래 일본’의 역사 인식도 현 정치인들 수준과 다름없거나 더 퇴행할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1990년대 전 교과서에 다 실렸던 위안부 관련 기술은 현재 모든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2001년 우익 세력인 ‘새역모’(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후쇼샤(扶桑社)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면서 이 흐름은 더욱 빨라졌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반성하는 ‘자학사관’을 벗어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교과서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과 관련해서는 왜곡에 가까운 기술을 점차 교묘하게 삽입했다. 예를 들어,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다’거나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고 표시하고, 간토(關東)대지진 조선인 학살자 수를 막연하게 ‘많다’라고 표현하는 등의 방식이다.

서종진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2006년 아베 집권 당시 이미 60년 만에 교육법이 개정됐고, 이제 구체적인 내용이 실현되어 가고 있는 단계다”며 “현재 우익 교과서 채택 수는 많지 않지만 ‘교과서 검정기준 개정’이 내년에 통과되면 교과서 내 우익성향 기술이 대폭 늘어날 것이다”고 전망했다. 새로운 검정 기준은 역사를 왜곡할 여지를 더욱 넓힌 것이다.

서 연구위원은 “검인정 제도하의 교과서 시장은 자본주의 원리로 돌아가기 때문에, 출판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알아서 정부 방침을 따를 것이고 퇴행적 역사인식을 담은 교과서를 만들 것이다”며 “아베 정권이 우경화할수록 우익의 목소리가 커지고, ‘우익 교과서’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도쿄 =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한국이 싫다’고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만화 ‘혐한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