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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론 / 천정환 지음 / 문학동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자살은 너무나 일상적인 사건이 돼 버렸다. 대부분의 기사는 사건을 깊게 성찰하지 못하고, 인터넷에는 자살자에 대한 모독과 루머가 흘러넘친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사실도 수없이 반복 인용돼 놀랍지도 않다. 그만큼 타인의 고통과 죽음에 점차 둔감해져 가고 있는 것.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실시간 중계된 자살 과정은 호사가의 ‘이야깃거리’ 정도로 여겨졌고, 사자(死者)는 죽어서도 웃음거리가 됐다.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이 붙은 한국이 지금 서 있는 지점이다.

우리는 왜,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이 책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자살의 성격과 원인, 그리고 그것이 문화적 매개물을 통해 어떻게 발현되는지 과거로부터 계보화해 추적한다. 그러면서 ‘지금-여기’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자살과 이를 둘러싼 문제상황을 섬세하게 돌아보기를 간절히 청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고통과 해석의 역사’로서 자살을 다룬다. 조선시대 자살 기록을 살펴보고 그것이 오늘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부분도 새롭다.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홍영식은 일본으로 달아난 김옥균, 박영효와 달리 도피하지 못하고 대역죄인으로 처형당했다. 이후 그의 아버지 홍순목은 제 손으로 어린 손자를 독살한 후 자살했고, 홍영식의 아내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연좌제를 피하기 위해서다. 노비가 되어서 비참하게 사는 건 죽음보다 더한 것이기에 ‘역적’ 양반가 사람들은 집단 동반자살을 했다. 또, 열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조선 여인들도 남편이 죽거나 정조를 잃으면 ‘숭고한’ 자살을 택했다. 이는 결국 조선식 공포정치와 유교적 봉건 이념에 의한 ‘타살’로 볼 수 있다.

지은이는 이를 토대로 오늘날의 자살, 즉 ‘사회적 타살’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우울증과 그 배후 원인을 주목한다. 현재 미디어가 자살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 중 하나는 우울증이다. 자살자 대부분은 우울증에 걸려 자살했다고 설명된다. 책은 “이러한 설명은 자살을 개인의 정신병리 현상으로만 표상되게 할 가능성 때문에 완전하지 못하며, 자살의 사회적 원인을 적절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현대 한국사회에서 자살과 결부된 우울증은 ‘자아의 테크놀러지’ 문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오늘날 만연한 자살은 ‘자아’들이 덮어쓴 양면 가면의 어두운 뒷면이며, 그 앞면은 경쟁의 전쟁터를 그야말로 홀로 ‘각개약진’하는 ‘자기계발’ 전사의 ‘쿨하고’ 잔인한 얼굴이다. 이 야누스는 심약하고 허약하다. 각도를 조금만 틀면 가려진 그의 뒷면이 보인다. 쓰러지도록 지치고 더 외로운.”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