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잉투기’를 영화화한 이유는.

“잉투기는 잉여들의 격투기라는 의미인 동시에 ‘ING+투기’ 즉 우리는 싸우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2011년 디시인사이드 격투갤러리에서 시작된 아마추어 격투 대회 이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잉여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온라인, 인터넷 세상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조사하다가 잉투기를 알게 됐다. 인터넷으로 보니 재미있고 웃기기만 했는데, 실제로 잉투기 대회를 연 관장, 참가한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해 보니 진짜 진지하게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접근 방법을 바꿨다. 껍데기가 아니라 진정성 있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칡콩팥’으로 활동하는 20대 백수 태식(엄태구)이 같은 커뮤니티에서 사사건건 대립하는 ‘젖존슨’에게 속아 급습당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태식이 젖존슨을 쫓아다니지만 결국 이루지 못한다. 시선이 매우 냉정하다.

“서툰 교훈을 주려거나 어쭙잖은 희망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제가 어디가 아프고 너무 힘들 때,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잖은가. 그런 느낌의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캐릭터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정서는 외로움이었다. 볼 때는 웃긴데, 나중에 곱씹어서 생각하면 웃기지만은 않구나라는 정도의 느낌, ‘우프다’는 느낌을 주는 인물들을 만들려 했다. ‘잉투기’를 취재하면서 만난 친구가 시사회장에 왔는데 너무 좋았다고, 자기 이야기 같다고, 눈물이 나올 뻔했다고 말했다. 외로운 친구들이 영화 속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했으면 하는 정도의 바람이다.”

―그렇다면 잉여인간, 잉여세대에 대한 위로인가.

“잉여라는 단어가 생긴 지 얼마 안 된다. 20대가 단군 이후 최고로 비생산적인 세대라고 하지만 오히려 ‘잉여’라고 규정짓는 것 자체가 더 패배감에 젖게 하는 것 같다. 왕따라는 말이 생기면서, 누군가를 보다 명확하게 왕따로 몰아넣었듯이 잉여라는 말이 생기면서 오히려 막막한 상황에서 더 자조하는 느낌이다. 흔히 나머지를 잉여라고 하는데, 나머지가 더 많아지면 더 이상 잉여가 아니지 않은가. 영화 속에선 단순히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줄긋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주인공이 친동생(엄태구)인데 어땠나.

“동생이니까 편하긴 한데 동생이다 보니 감독으로 하지 않아도 될 고민까지 한다. 동생도 자기 캐릭터만 고민해야 하는데, 비가 오면 촬영이 어떻게 되나 같은 것까지 고민한다.” 엄 감독은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다 2학년 때 휴학한 뒤 영화미술팀 아르바이트를 하다, 영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그 뒤 대학을 졸업하고 충무로 연출부 생활을 하다, 2011년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잉투기’는 아카데미 장편제작지원 작품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