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열차가 지하철 5호선의 한 역에 정차해 있다. 기관사는 3시간10분 동안 이렇듯 어두운 터널에서 같은 장면만 계속 바라봐야 한다.

“역에 정차할 때마다 출입문 32개에서 안전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바짝 긴장하게 됩니다. 사고가 났다 하면 대형사고이기 때문에…. ”

6일 만난 서울도시철도공사 5호선 소속 이종걸(35) 기관사는 “2∼3분 간격으로 역에 설 때마다 8량짜리 지하철의 모든 출입문과 스크린도어를 제어해야 한다”며 “모니터를 보면서 급하게 타고 내리는 승객이 없는지 육안으로 확인하고 안전한 타이밍을 잡아 문을 닫는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0시 28분∼오후 1시 39분까지 25개 역을 운행하는 근무일정 전체를 동행 취재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측은 “국회 보좌관들이 일부 일정을 점검한 적이 있지만, 외부인이 기관사의 전체 일정에 동행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날 동행 취재는 어두컴컴한 영화관에서 같은 장면만 계속되는 3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줬다. 시간표에 적힌 도착시간에서 1∼2분이라도 오차가 발생하면 안전문제와 민원이 발생하기 때문에 3시간 동안은 화장실에 갈 새도 없다.

이 기관사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함부로 뭘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2시간쯤 어둠 속에 있다 보니 눈이 침침해졌다. 왕십리역에서 도착 기관사와 교대하면서 “이상 없다”는 간단한 대화를 주고 받은 뒤엔 3시간 넘게 말 없이 끝없는 어둠을 뚫고 달렸다. 이날 이례적으로 기자가 동승해 몇 마디 주고 받아 그나마 적적함이 덜했다고 한다. 평소엔 역마다 풍경도 없는 터널을 오롯이 혼자서 달리는 게 일상이다.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는 주간 근무인 날도 있지만 오후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에 퇴근하는 야간 근무도 많다. 패턴은 매주, 매달 불규칙적으로 짜여 있다.

폐쇄된 공간에서 혼자만 일하고 근무 시간이 일정한 패턴을 갖지 못하니 신체리듬이 깨지는 현상은 기관사들의 피할 수 없는 직업병이다. 1차 운행을 마치고 지상으로 나오자 눈이 시리고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다. 이 기관사는 “잠깐이라도 지상을 지나면 한결 기분전환이 될 텐데 5호선은 출발역부터 종착역까지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구간이 없다는 게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최근 1년6개월 새 서울도시철도공사 기관사 3명이 자살하면서 기관사 근무환경 개선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노조가 지난 10월 21일 공개한 올해 임시 건강검진 결과를 보면 최근 1년 안에 자살을 떠올렸다는 기관사(자살사고군)가 전체 980명 가운데 33명(3.4%)에 이르렀다. 밀폐되고 어두운 지하에서 혼자 일하다 보면 공황장애에 시달릴 가능성이 일반인보다 현저히 높다는 것이다.

노조 측은 1인 기관사 제도를 2인으로 전환하는 등 종합적인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산업안전 전문가들을 초빙해 ‘기관사 최적근무위원회’를 만들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위원회는 지난 8월 1인 승무제가 공황장애 및 자살의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판단, 안전사고가 많은 러시아워 시간대만이라도 2인 기관사 체제를 도입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방안을 시에 보고했다. 하지만 시는 예산 등 현실적인 이유로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글·사진 =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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