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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규 서울대 교수 / 경영학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이후 처음으로 620여 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된 국정감사가 지난 2일로 끝났다. 하지만 이번 국감(國監) 역시 아쉽게도 과거와 혁신적으로 달라진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충분한 사전 조사도 없이 출석하는 증인 및 참고인 숫자를 늘리다 보니, 답변을 추궁하는 목소리만 높이는 일이 되풀이되는 등 해마다 이맘때면 국감에서 으레 반복되던 모습들을 국민은 힘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특히, 국감장 출입증을 받으려는 피감기관 공무원들과 관련 직원들이 아침부터 긴 행렬을 이루는 모습이나 밤 10시가 지난 시각에도 일부 국감장은 아예 정부기관을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런 와중에 피감기관 직원들은 국감장 바로 옆에서 모니터로 감사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실시간으로 관련 자료를 만드느라 진땀을 흘렸다. 마치 전 부처가 벼락치기 시험 준비를 하는 듯했다.

초대 국회에서 시작된 국감은 1972년 유신헌법으로 국회 해산과 함께 일시적으로 중단됐다가, 16년 뒤인 1988년 10월 4일 재개됐다. 1987년 6월 국민의 민주화 열망은 대통령직선제와 헌법 개정을 실현시켰고, 개정된 헌법에서 국감권을 부활시켜 행정부와 사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입법부의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처럼 국감은 3권 분립의 원칙 아래 국회와 국민의 권익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엄정한 원칙과 함께 매우 실효성 높은 국감을 실행하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국감을 지켜보면서 경영학을 전공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더욱 안타까웠던 점은 공기업(公企業)에 대한 감사였다. 수 십 년 전에 비해 경영 환경과 기업의 위상은 확연히 달라졌다. 공기업을 비롯한 많은 국내 기업이 내수(內需) 경쟁을 넘어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고, 다양한 방면에서 전문성이 증가했다. 하지만 이처럼 기업 감사에 필요한 지식과 전문성은 날로 증가하는데, 수 십 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국감을 계속하는 것이 과연 국가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일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일부 국회의원은 기업을 경영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수 십 년 전과는 위상이 확연히 달라진 공기업들을 대상으로 과거처럼 문제점만 지적하는 국감 방식은 이제 혁신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감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 감사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들을 참여시키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2∼3일에 걸친 벼락치기식 감사가 아닌 수 개월에 걸친 검증 과정을 통해 체계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내부 감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민간 감사기관들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면 공기업 국감에 사용하는 의원들의 시간을 국가적 차원에서 조금 더 의미 있는 행정부와 사법부 감사에 추가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감사 내용에 있어서도 기업의 생산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감사를 해야 한다.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하고 있는 기업인들을 마구잡이 방식으로 소환해 큰소리로 추궁하는 것이 세계 경제 10위라는 경제대국에서 볼 수 있는 국감의 주된 내용과 방식이 돼선 안된다.

전문성과 실효성 있는 감사를 통해 공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자발적인 변화와 혁신을 유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줘야 한다. 공기업 국감에 대한 패러다임을 21세기 글로벌 경쟁 시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전환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어깨를 나란히 견줄 수 있는 공기업으로 육성하고 성장시켜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이러한 의미 있는 변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국정감사를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부터 혁신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매년 거처야 하는 관례처럼 큰소리로 문제점을 지적하는 국회의원들을 매섭게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지만 피감기관의 건설적인 미래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감사 내용을 높게 평가해야 한다. 지난해 대비 또는 10년 전 대비 국정감사가 얼마나 달라졌느냐에 초점을 두고 평가하는 국민이 돼야 한다.

국내의 수많은 공기업이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만큼 실질적인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대한민국이 진정한 경제 강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