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선 / 전국부장

서울대 학생들이 며칠 전 ‘뒷간’ 이야기를 경청했다. 공대 교양과목 ‘물의 위기’ 특강에서였다. 초청 강사인 이원형 해우재(解憂齋) 관장은 화장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80분간 풀어냈다.

“과거 변소(便所)는 논밭의 거름이 되는 분뇨를 제공해 준 생산력의 원천이었다. 현재의 수세식 화장실은 이용하기 편리한 대신에 물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주범이다. 갈수록 물이 부족해지는 지구촌에서 화장실 용수 문제는 조속히 해결해내야 할 과제다.”

이 관장은 이런 문제 의식이 해우재의 창립자인 고 심재덕(1939∼2009년) 전 의원으로부터 비롯됐음을 강조했다. 해우재는 심 전 의원이 지난 2007년 경기 수원에 있는 자신의 집을 변기 모양으로 재건축해서 만든 화장실 문화 전시관이다.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우리나라 사찰의 화장실 해우소(解憂所)에서 이름을 빌렸다.

해우재를 지은 데서 알 수 있듯 심 전 의원은 화장실 운동에 미친 사람이었다. 한국에서 시작된 화장실 문화 혁명을 세계에 전하는 한편, 국제 사회가 저개발국가의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그는 세계 최초로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데 앞장섰다. 한국 주도로 세계화장실협회(WAT)를 창립하는 데 산파역을 하기도 했다.

그는 전립선암이 발병한 후에도 세계 각국을 돌며 화장실 문화 운동을 펼쳤다. 그의 활동을 곁에서 지켜본 기자는 그의 진심 어린 호소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전 세계 인구의 40%가 화장실 없이 생활하고 있다. 저개발국가의 어린이들이 비위생적인 환경 탓에 전염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 국제사회가 손을 맞잡고 이를 막아야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유족들은 해우재를 수원시에 기증했다. 시는 지난달 22일 해우재 인근 부지에서 ‘화장실 문화센터’ 기공식을 했다. 문화센터가 예정대로 내년 4월 완공되면 해우재는 세계 첫 화장실 박물관이 된다. 세상을 떠난 이의 유지를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잘 받들고 있으니 우리 사회에서는 드문 사례인 셈이다.

문제는 세계화장실 운동의 주도권을 중국에 내주게 생긴 것이다. 심 전 의원 사후에 정부의 무관심 등으로 인해 세계화장실협회 활동이 부진해졌고 관련 혁신운동도 시들해졌다. 상대적으로 화장실 문화 후진국이었던 중국은 국가적으로 혁신 운동을 전개, 큰 성과를 거뒀다.

지난 8월 중국대외인민우호협회가 주관한 ‘중국 화장실 혁신대회’에 미국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빌 게이츠 재단)이 동참한 것은 우리로서는 뼈 아픈 일이다. 빌 게이츠 재단은 개발도상국 화장실 모델 개발 등을 위해 중국 측에 3조여 원을 지원키로 했다는 후문이다.

한국 대표로 이 대회를 참관했던 해우재 관계자들은 탄식했다. “우리가 화장실문화 종주국이라는 자만심에 젖어 주춤거리는 사이에 중국이 세계화장실 혁신운동의 주도권을 쥐려 하고 있다.”

근심을 풀어야 할 해우재에 근심이 생긴 것인데, 정부와 국민의 관심만이 이를 풀어낼 비법이다. ‘뒷간 문제’라고 뒤로 미뤄놓을 일이 아니다. 당장 내년 2월 수원에서 열리는 세계화장실협회 총회부터 관심을 갖고 살펴야 할 일이다.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