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세상에 없던 손목시계형 스마트폰 ‘갤럭시 기어’를 탄생시킨 삼성 디지털시티 모바일연구소(R5)의 쌍둥이 건물이 24일 가을비 속에 우뚝 서서 위용을 뽐내고 있다. 수원=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24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매탄동에 위치한 삼성 디지털시티를 찾았다. TV부터 스마트폰을 아우르는 전자업계의 글로벌 제조왕국 삼성의 두뇌 역할을 하는 곳이다. 총 171만9000㎡(약 52만 평)의 방대한 면적에 석·박사급 인재를 포함한 2만7000여 명의 연구개발(R&D) 인력들이 총 5개의 대형 연구소(R1∼R5)에 모여 지금껏 아무도 본 적이 없는 미래의 혁신 제품을 만들어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입구에서 차종과 차량번호, 취재기자의 주민등록번호까지 등록하는 엄격한 보안절차를 통과하고 서서히 단지 안으로 진입하자, ‘비전 2020, 세계를 깨우고 미래를 창조하라(Inspire the World, Create the Future)’ ‘혼(魂)·창(創)·통(通)’같이 창조성을 강조하는 각종 구호들이 건물 담벼락에 적혀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삼성의 창조경제를 맨 앞에서 이끄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실의 상품기획팀을 만나기 위해 빗속을 뚫고 이곳에 왔다.

이들은 이달 초 독일 가전쇼(IFA 2013)에서 깜짝 공개된 삼성의 웨어러블(Wearable·탈착형) 컴퓨터, ‘갤럭시 기어’를 탄생시킨 창의 조직이다. 25일 전 세계 58개국에서 동시에 출시된 갤럭시 기어 등 세계 최초의 상품 탄생 과정과 비화를 공개하기 위해 그동안 닫아 놓았던 문을 연 것이다.

지난해 12월 결성 후 갤럭시 기어를 탄생시키기까지 약 10개월간 태스크포스 신규사업개발팀(NBD그룹)을 이끌어온 이원식 삼성전자 전무는 “1999년 나온 최초의 시계형 전화기 ‘워치폰’ 등 삼성의 개발 전력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우린 플러스알파만 하면 됐다”고 겸손하게 업적을 요약했다. 그러나 세상에 없던 제품,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소비자가 필요로 할 제품, ‘유’를 창조하는 과정은 예술가 못지않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이명환 개발팀 과장은 “R&D팀, 기술팀과 수도 없는 회의, 협의를 거듭해가는 과정이 힘들고도 보람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카메라를 넣을까 말까, 스피커를 몸체에 달까 줄에 달까’ 하는 결단의 순간들이 열 달 내내 되풀이됐다는 것이다. 위대한 일을 해치운 비범한 인재들은 자신들이 위대한 작품을 완성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다.

이 전무는 “우리가 만들긴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이 물건을 쓸지는 사용자들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모범 기능과 사용법을 매뉴얼에 규정해 놓았지만 이를 뛰어넘는 창의적 활용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올 것을 예상한 발언이었다. 애플의 아이폰도 세상에 나와 원래 기대하지 않았던 수많은 효용을 줄 수 있음이 소비자들에 의해 증명된 바 있다.

이 전무는 “독일에서 최초 공개 시 갤럭시 기어의 카메라와 마이크에 시선이 집중되는 바람에 본질적인 통화 기능이 묻혀버린 감이 있다”며 “손목에 전화기를 달고 다니면 편리한 점이 많다”고 자랑했다.

개발팀에 따르면 두 손을 쓰기 힘든 상황에서 손목 전화기는 자유로운 통화 쾌감을 안겨준다. 예컨대, 운전을 할 때 전화를 걸고 받기가 수월해지고 안전에도 도움이 된다. 이 전무는 즉석에서 손목에 대고 “○○○에게 전화”라고 음성명령을 내리는 장면을 시연해줬다. 음성인식을 한 갤럭시 기어는 수m 떨어진 본체 전화기를 통해 통화 희망 인물을 찾아 발신을 시작했다. 이윽고 연결이 되자 갤럭시 기어의 몸체 양쪽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여보세요” 하는 낭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실내라면 충분히 대화가 가능한 또렷한 음질이었다. 목소리를 보내는 마이크는 시곗줄을 채우는 고리에 해당하는 금속 부분에 있지만 얼굴 근처에서 말하기만 해도 의사소통이 됐다. 자동차 안에서 스피커폰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 이해가 됐다.

개발팀의 막내인 김슬아 대리는 “여자들이 보통 휴대전화를 백 안에 넣고 다니잖아요? 전화를 걸고 받을 때 꺼내지 않아도 손목시계로 통화가 되니 정말 좋아요”라며 여자로서의 사용 경험담을 들려줬다. 김 대리는 또 장을 볼 때 양손에 쇼핑백을 든 상황, 부엌에서 요리를 하며 손에 밀가루 등이 묻어 전화기를 들기 힘든 상황 등을 활용 사례로 꼽았다.

갤럭시 기어는 물론 갤럭시 전화기와 일체로 사용해야 한다. 손목시계형 기기 단독으로는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근거리 통신인 블루투스가 작동하는 10∼15m 내 전화기가 있어야 된다. 전화기가 본체, 손목시계는 보조 기기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삼성은 ‘컴패니언 디바이스(동반 기기)’라고 이름을 붙였다.

외국 언론은 이 점을 비판하기도 한다. 전화기를 꺼내들면 되는데 왜 손목시계형 보조 기기를 따로 299달러(약 40만 원)나 주고 살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손목시계형 기어를 차고 생활해본 경험이 없어 나온 이야기다. 1시간가량 짧은 순간을 체험했는데도 ‘이거 재미있네, 편리하겠네’ 하는 이른바 ‘와우(WOW) 익스피리언스’를 겪었다.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두근두근’, 다른 이들도 곧 경험하게 될 귀중한 순간이었다.

수원=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