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시 4급 이상 간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성희롱 예방교육이 서소문청사에서 열려 박원순 시장 등 서울시 간부들이 지켜보고 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지난 7월 고려대의 한 남학생이 무려 2년간 같은 학교 여학생 19명의 신체 부위를 휴대전화 카메라 등을 이용해 몰래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등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고려대에서는 지난 6월 한 교수가 캠퍼스 내에서 여학생을 성추행하고, 지난 5월에는 또 다른 교수가 영화관에서 여성의 치마 속을 촬영하다가 적발돼 망신을 당했다.

이같이 대학에서 잇따라 성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대학 내 성범죄 예방교육이 유명무실화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학뿐 아니라 학교와 공공기관 등에서의 성범죄 예방교육 역시 부실한 것으로 나타나 보다 내실화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대학 성희롱 예방교육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 24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성범죄 예방교육은 크게 성폭력, 성희롱, 성매매로 나뉜다. 대상은 유치원, 어린이집,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지방자치단체 등 6만7000여 개의 공공기관이다. 기업을 대상으로 한 예방교육은 고용노동부에서 맡고 있다. 지난 6월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공공기관에서의 성폭력 예방교육이 의무화됐다. 교육을 하지 않으면 최고 300만 원의 과태료를 무는 등 제재를 가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과 성매매 예방교육의 경우 이수하지 않는다고 해도 명확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대학의 성범죄 예방교육이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12년 전국 418개 대학의 성희롱 예방교육 참여율은 49.8%에 그쳤다. 이는 전체 공공기관 참여율 86.1%와 크게 비교되는 수치다. 또 지난 8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희정(새누리당) 의원이 여성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417개 대학 중 34개 대학은 성희롱 신고 및 상담센터 자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63개 대학은 아예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지도 않았다.

여성부는 매년 대학 교직원과 학생들을 상대로 한 성범죄 예방교육의 이수 여부를 조사하고 있지만, 성희롱과 성매매 예방교육의 경우 교육을 하지 않았다고 드러나도 참여를 권고하는 수준에 그친다.

이에 대해 여성부 관계자는 “대학의 경우 수업을 자율적으로 수강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강제 집합교육이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면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마다 성범죄 예방교육을 하거나, 어디에서나 영상을 통해 예방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영상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도 형식적인 예방교육 = 이 같은 부실한 성범죄 예방교육은 대학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공공기관, 학교,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예방교육 역시 형식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성범죄 예방교육은 모두 1년에 1회, 1시간 이상으로 규정돼 있다. 1년에 1시간이라는 시간이 올바른 성관념을 심어주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예방교육 전문강사들에게 해당 기관이 강사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 규정 이상으로 시간을 확대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마저도 아끼려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일부 금융사들은 무료 성범죄 예방교육을 실시하면서 보험, 금융 상품 등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게다가 어린이집의 경우 교사가 5인 이하로 소규모인 곳이 많아 전문강사를 초빙해 강의료를 부담하는 게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여성부는 20인 이상이 모일 경우, 전문강사를 파견해 비용 부담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찾아가는 성폭력 예방교육’을 시범실시한다고 24일 발표했다. 그러나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인원수를 맞춰 신청해야 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성희롱 예방교육 참여율은 2011년 87.6%에서 2012년 85.7%로 하락했다. 학교는 2011년 81.3%에서 2012년 78.6%로 떨어졌고, 공직유관단체는 91.4%에서 85.3%로 하락했다.

한편 여성부로부터 위탁받아 성범죄 예방교육 전문강사를 양성하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예방교육 내실화를 위해 강사 양성교육을 기존 60시간에서 80시간으로 확대하고, 변호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도 강사로 활동하도록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특히 교원들을 대상으로 아동성폭력 예방뿐 아니라 양성평등, 다문화 등 6개 과정의 직무연수를 추진하고 있다. 우선 오는 10월 4000명의 신입교원을 대상으로 아동성폭력 예방교육 연수를 실시한다. 그러나 이 역시 현장에서의 성범죄 예방교육 시간 자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여성부 관계자는 “지난 6월 성폭력 예방교육이 의무화되는 등 기존에 자율에만 맡겨지던 성범죄 예방교육을 현재 의무화하는 전환기에 있다”면서 “이 때문에 미비한 점들을 점차 보완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현진 기자 cworang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