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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뮤지컬이라 할 수 있는 가무극(歌舞劇)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2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린 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사진)는 서울예술단(예술감독 정혜진)이 그동안 끈덕지게 추구해온 가무극의 정답을 제시한 듯한 작품이었다.

서울예술단은 전통적 가무악이 살아 있는 공연을 창출하기 위해 십수 년간 여러 가지 실험을 시행해 왔다. 지난해의 경우 근대가무극이란 기치를 내걸고 ‘윤동주, 달을 쏘다’를 무대에 올렸으며, 그 이전에도 ‘바람의 나라’ 시리즈를 통해 우리네 전통과 서양 뮤지컬의 접목을 부단히 실험해왔다. 하지만 가무극이란 장르가 정착하기엔 뭔가 미진한 감을 떨칠 수 없었다. 여기엔 제작비의 한계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무극이란 장르를 새롭게 규정해야 하는 데 따른 어려움이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서울예술단이 새롭게 창작극으로 선보인 ‘잃어버린 얼굴 1895’는 그동안의 노고가 결코 헛수고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무엇보다 가(歌), 즉 노래와 무(舞), 곧 춤 그리고 극(劇)이 절묘하게 조화된 공연이었다. 전통적인 선율이 짙게 배어 있는 음악과 한국적 춤사위가 살아 있는 안무는 분명 일반 뮤지컬과는 또 다른 장르로서의 가무극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잃어버린 얼굴 1895’는 열강들의 각축전 속에서 칼날 위에 선 듯한 삶을 살았던 명성황후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작품이다. 단순히 명성황후의 일대기가 아니라 구한말의 긴박한 정세를 배경으로 그녀의 삶이 어떻게 굴곡져 왔는가를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찬양 일변도에서 벗어나 비판적 시각 또한 생생하게 살려 명성황후가 과연 어떤 인물이었던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극의 모티브가 된 것은 명성황후의 사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구한말 왕가의 사진은 여러 장이 남아 있지만 유독 명성황후만은 진영(眞影)이 전해지지 않는다. 여기에 착안한 극은 액자 가득한 사진관을 배경으로 사연을 펼쳐나간다. 사진관 벽면을 가득 채운 궁궐 풍경과 황실 가족사진들을 보면서 명성황후는 자신의 생전 시절로 돌아가 다시 한번 삶을 돌아본다. 특히 사진 액자를 활용한 무대는 마치 설치 미술 갤러리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명성황후 역의 차지연은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절정의 가창력으로 작품을 빛내고 있다. 백성들에게 원성을 사는 인물로서의 독한 면모와 시아버지 대원군과 정치적 줄다리기를 벌여나가야 하는 지략가로서의 입장, 그 와중에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사진 한 장 찍지 않는 용의주도함까지 다양한 면면을 설득력 있게 펼친다. 사진사 휘 역의 손승원을 비롯해 고종 역의 박영수, 김옥균 역의 김도빈, 대원군 역의 금승훈, 선화 역의 김건혜 등 출연배우들의 연기 또한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각색 및 연출을 맡은 이지나 씨는 “‘명성황후’라는 인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사람마다 각자 다를 것이며 그 각자 다른 시선들을 모으는 것이 이번 작업이었다”면서 “(공연을 통해) 잃어버린 명성황후의 얼굴을 각자 찾아가시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극본 및 작사 장성희, 작·편곡 민찬홍. 공연은 29일까지.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