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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 논설위원

지난달 28일 오후 3시 미국 워싱턴 한복판의 링컨기념관 계단 앞에서는 꼭 50년 전 ‘불멸의 시간’이 재연됐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로 기억되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명 연설은 당시 25만 군중의 심장을 움직였다. 미국의 양심을 깨우고, 인권 역사를 바꿔놓았다. 미국 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바로 그 자리에 섰다. “우리에겐 아직 위대한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꿈을 향한 열정은 세월·인종·계층을 뛰어넘어 이어진다.

미국인에게 킹 목사는 공영방송 PBS의 다큐멘터리 ‘아이즈 온 더 프라이즈(Eyes on the Prize)’를 통해 살아 있다. 20세기 미국의 사회 운동을 기록한 14시간짜리 역작이다. 1987년 첫 전파를 탄 후 에미상도 받았다. 제작자 헨리 햄튼은 킹 목사를 아는 수백 명과 면담했고, 수많은 비디오·사진·노래를 쓰면서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했다.

이를 다큐 영화로 다시 내놓는 건 더 힘들었다. 그 사이 저작권이 옮겨진 것이 많았고, 처음 받은 허가의 상당수는 DVD 등 다른 매체에서 사용할 권리가 없었다. 20년 가까이 걸린 악전고투 끝에 2006년에야 햇빛을 봤다. 햄튼의 결론은 이렇다. “오늘날 실화 영화는 절대로 만들 수 없다.”

한 세대 전만 해도 각각의 노래나 앨범이 음악산업의 가치를 창출했다. 그러나 지금은 합치고, 변형하고, 새로운 장르로 개척한 창작물이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낸다. 단, 저작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음원 저작권자는 늘어나는데 음반산업은 위축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다. 저작권법은 끊임없이 변하는 기술적 가능성까지 담아내지는 못한다.

‘공유재의 비극’은 주인 없는 자산의 남용으로 결국 남아나지 않게 되는 현상이다. 소유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주인이 너무 많아지면 거꾸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미 컬럼비아대 마이클 헬러 교수는 이를 ‘반(反)공유재의 비극’이라고 지칭했다. 제약사들이 거미줄처럼 깔린 특허권 때문에 사스 발병 초기 치료제 개발을 포기한 것은 비근한 사례다.

킹 목사의 얘기로 돌아가면, 그 불멸의 연설 장면은 ‘공공의 소유’가 아니다. 공개 장소에서 대중을 상대로 했지만, 킹 목사 유족의 사적 소유물로 저작권 보호를 받는다. 연설 전체를 들어보려면 20달러짜리 DVD를 사야 한다. 미국의 정신을 담은, 공적 가치의 상징인 킹 목사 연설이 공유될 수 없는 현실은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