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집트 다슈르 지역에 있는 고대 이집트 중왕국 시대의 파라오 아멘엠하트 3세(BC 1842∼BC 1797)의 ‘검은 피라미드’ 앞에 도굴을 위해 판 것으로 추정되는 굴의 흔적이 남아 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나라로 잘 알려진 ‘고대 유적의 보고’ 이집트가 도굴꾼들 때문에 속을 끓이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 시위로 호스니 무바라크 체제가 붕괴된 데 이어 지난 7월 3일 무함마드 무르시 체제마저 붕괴되면서 정정혼란이 지속되자 조직적인 도굴꾼들이 거리낌없이 유적지를 활보하며 유적약탈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31일 이집트 유적지 관리 당국은 도굴꾼들이 카이로 남쪽에 있는 고대유적지 다슈르 곳곳에 굴을 파 피라미드의 보물을 약탈해갔다고 밝혔다. 다슈르는 계단식 피라미드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모양의 정통 피라미드 양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적지로, 이집트 고대 왕조의 비밀을 간직한 유물들이 묻혀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당시 이를 알아챈 몇 명의 경비원들이 이를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첨단 무기로 무장한 도굴꾼들을 당할 수는 없었다.

다슈르의 유적지가 도굴되던 날 카이로 공항 세관에서는 한 이집트인이 고대 콥트교 성화 3점을 미국으로 빼돌리려다 적발됐다. 전문적인 도굴꾼들이 굴착기를 동원해 유적지를 훼손하는 일도 잦으며 심지어 정부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창고 및 박물관을 터는 경우도 있다. 이집트 남동부 아스완과 룩소르, 기자지구 등이 대표적인 피해 지역이며 7월 피라미드 유적지 사카라에서는 도둑들이 작은 동상을 보관해둔 국영 창고를 털어 달아나는 일도 벌어졌다. 심지어 이집트 도굴꾼 일부는 리비아의 무기 암시장에서 사들인 중화기 등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채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고고학자인 모니카 하나에 따르면 수도 카이로로부터 112㎞가량 떨어진 마을 아부 설 알리 말라크의 경우 현재 도시의 70%가량이 도굴꾼들에 의해 전부 파헤쳐진 상태다. 이 지역은 기원전 3250년부터 서기 700년까지 묘지로 사용됐으며, 과거 고대 이집트에서 죽음의 신이었던 오시리스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폐허나 다름없는 상태다. 이어 그는 “이집트에서는 도굴꾼들이 귀금속 등을 훔치기 위해 묘지에서 파낸 해골을 가난한 아이들이 뒤지거나 개들이 물고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다.

도굴 사태가 본격화된 것은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몰아낸 ‘아랍의 봄’ 시위 이후다. 이 시기 사회 질서가 무너져 경찰 등 보안인력의 수요가 급증하자 도굴꾼들의 움직임이 한층 대담해졌다. 무르시 정권이 들어선 이후 잠시 주춤하는 듯했던 도굴행위들이 무르시가 축출되고 정치적 혼란기가 지속되자 다시 기승을 부리는 상황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