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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규 / 서울대 교수·경영학

최근의 신문을 보면 우리 경제와 관련한 반가운 소식들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지난 6월 경상수지 흑자가 72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17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는 소식이다. 게다가 상반기 전체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97억 달러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상반기에 기록했던 221억 달러라는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는 분석이다.

다음으로는 한국은행의 발표 수치다. 올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1%를 기록하며 9분기 만에 처음으로 0%대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동안 전기 대비 성장률은 2011년 1분기 1.3%를 기록한 이후 8분기 연속 0%대에서 움직였기 때문에 이번에 발표한 수치는 매우 의미 있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소식들에 대해 정부는 물론 일부 전문가도 이제 한국 경제의 경기가 바닥을 다지고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특히 기획재정부는 거시지표들이 회복 모멘텀을 되찾고 있다고 강조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대다수 산업은 저성장과 불황의 늪에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왔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소식을 학수고대(鶴首苦待)해 왔다. 그럼 이제 한국 경제의 봄은 정말 오는 것일까?

기성세대들은 굶기를 밥먹듯 하던 그 옛날의 ‘보릿고개’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묵은 곡식은 거의 떨어지고 새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가정의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보릿고개…. 그런데 그 보릿고개를 이겨내야 하는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보릿고개가 끝나 가는 시점이 가장 힘겹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동안 겨울을 나기 위해 비축했던 식량이 모두 바닥나는 시점인 까닭이다.

국가 경제도 보릿고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식량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보릿고개가 시작되는 시점보다 오히려 끝나 가는 시점이 더 힘들게 마련이다. 현재 한국 경제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내수시장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일반 서민들이다. 거시경제 지표의 1차적인 혜택을 누리는 대기업들과는 달리, 서민들은 지난 5년 동안 위기 극복을 위한 에너지와 인내심을 모두 소진해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기반을 구성하고 있는 서민들에게는 거시지표보다는 서민들의 소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생활물가가 더욱 민감하게 피부에 와 닿는다. 안전행정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올 상반기 소비자물가는 겨우 1.3% 상승했다. 하지만 서민들이 자주 접하는 생활물가 상승 수준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

그 예로 택시 요금은 2686원으로, 같은 기간 304원(12.8%)이 뛰었고, 가정용 도매 도시가스료는 1만403원으로 429원(4.3%) 인상됐다. 비빔밥이나 냉면, 칼국수 등 서민들이 즐겨 찾는 외식 메뉴의 가격은 물론 목욕료·이용료·세탁료 등 개인 서비스 요금도 크게 올랐다. 그리고 하반기에는 공공요금마저 줄줄이 인상 대기 중이다. 이러한 생활물가 상승은 민간 소비를 위축시키면서 경기침체를 연장시키는 효과가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2분기 카드 사용액 증가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한국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었거나, 백보 양보해서 회복 모멘텀을 찾아가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이다. 바로 이런 시점에 경제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 관계자들이 한 번 더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서민들이 체감하는 생활경제다. 서민들이 행복한 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내 소비 진작이 시급하다. 국내 내수가 활성화돼야만 전통시장이 활기를 되찾을 수 있고, 동시에 영세 자영업자들도 기운을 되찾을 수 있다.

여름 휴가철을 맞으면 소비자의 지갑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한국 경제에서는 ‘여름휴가 특수’라는 호황이 사라져 버린 듯하다. 반대로 해외로 출국하는 여행객 수와 해외 여행객이 지출하는 여행수지 적자는 빠르게 커지고 있다. 마치 해외여행과 해외에서 소비하는 것을 부(富)의 상징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경제성장률과 고용률 지표보다 내수 소비 및 소비 활성화 문제를 더욱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