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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권/한국재정학회장, 韓經硏 사회통합센터 소장

지난주 박근혜정부의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 대한 밑그림을 조세재정연구원에서 발표했다. 곧 정부의 구체적 발표가 있을 예정이다. 정부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첫째는 공약에 충실한 복지 확대와 경제민주화의 반영 여부이고, 둘째는 저성장 기조의 경제 환경을 조세정책을 통해 바꾸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상충하는 정책목표이므로, 정부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어차피 정책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제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었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민간에선 2% 초반대로, 내년에는 3%대로 전망하고 있다. 고용을 정책의 우선순위로 내세우지만, 3%대 성장(成長)으론 국민이 만족하는 고용 수준이 쉽지 않다. 세계 경제의 전망도 그리 밝지 않아,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의 경제성장 수준은 절대 낙관적일 수 없다. 저성장 시대엔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조세정책은 경제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 수단이며, 많은 연구에서 이미 검증됐다. 그동안 대선의 정치 경쟁에서 경제민주화라는 깃발을 효과적으로 이용했으니, 이제 정책으로 경제를 살려야 한다. 정권을 잡기 위해선 형평·균형 등을 내세웠지만, 지속적인 성장이 뒤따르지 않으면, 국민의 마음은 돌아선다.

경제성장을 이끄는 조세정책 방향은 단순 명료하다. 우선 비과세(非課稅) 및 감면을 폐지해야 한다. 비과세 및 감면은 정치인들의 먹거리이므로 이론만큼 쉽지 않다. 정치인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건, 비과세 및 감면 조항을 결정하는 권한 때문이다. 많은 이해집단들이 정치인들의 경조사, 후원회 등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로비 하는 이유는 바로 이 권한 때문이다.

기업은 열심히 경제활동을 통해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데, 로비를 통해 쉽게 비과세 조항을 현실화시키면 훨씬 비용 효과적이다. 그래서 정치인과 이해집단은 서로 이익을 보면서 공존하는 구조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비과세 및 감면 조항은 가혹할 정도로 폐지해야 한다. 그 대신 세율을 낮춰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지대추구(rent seeking)’가 아닌 ‘이윤추구(profit seeking)’하므로, 우리 경제도 성장하게 된다. 이른바 ‘넓은 세원과 낮은 세율’ 정책이다.

경제성장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세목이 법인세다. 법인세 수준은 기업 투자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실증적으로 검증됐다. 법인세 수준은 기업 투자의 수익률을 결정하는 요소다. 법인세 수준이 낮으면, 그만큼 기업 투자에 대한 수익률이 높아지므로 투자가 증가한다. 이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자연법칙과 같은 ‘수요법칙’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2010년 기준으로 19.3%의 낮은 수준이며, 우리와 같은 그룹으로 미국과 일본을 들 수 있다. 반면 세 부담이 높은 국가들은 유럽이며, 스웨덴의 경우엔 34% 수준이다. 이렇게 낮은 세 부담을 가진 한국의 세목별 부담 수준도 당연히 낮은 것이 상식적 예측이다.

그러나 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을 보면, 한국은 3.5%로 스웨덴과 같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비중도 2.9%임을 볼 때, 우리 법인세 부담은 상대적으로 너무 높다. 흔히 우리 명목법인세율이 일본, 미국 등과 비교해서 낮은 수준이라고 비판한다. 한국은 세계 경제를 이끄는 경제대국이 아니고, 세계 경제의 흐름을 잘 살펴서 먹거리를 챙겨야 하는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다. 명목세율을 단순 비교하거나, 대기업을 갑을관계 구조 속에 두고, 이념투쟁형 법인세 정책으론 저성장 구조를 헤쳐나갈 수 없다. 경제민주화로 정치 경쟁에서 성공한 만큼, 이제 성장 중심의 조세정책으로 국민의 마음을 다시 얻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