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는 독일 히틀러의 나치즘에 확고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던 법학·정치학자 카를 슈미트(1888~1985)의 망령이 떠돌고 있다. 한 차례 실패했던 군국주의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는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내각이 굿판을 벌여 불러낸 제3제국의 망령이다. 2인자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이 29일 강연에서 밝힌 “나치스 정권이 헌법을 무력화한 수법을 배우자”는 취지의 망언은 예상된 이정표의 한 획에 불과하다.

신군국주의 목표를 향한 수단으로서의 개헌이다. 국제사회의 누구도 원하지 않고,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타국과의 심각한 갈등을 우려하는 일본의 신군국주의가 정당화의 논리를 끌어댄 지점이 바로 슈미트의 ‘독재론’ ‘지도자의 결단주의’ 이론이다. 법과 정치질서가 정당화될 수 있는 근거는 주권적 권위자의 결단 속에서 찾자는 주장이다. 슈미트는 “(지도자는) 헌법을 완전히 효력 정지시킬 것인지 어떤지를 결정하는 자리에 있다”(슈미트 저 ‘정치신학’)고 주장했다. 일본은 현재 지도자 아베·아소의 정치적 결단으로 일본의 보통국가화, 군사대국화, 이를 위한 헌법 9조·96조의 개헌을 통해 극단적인 국가주의로의 탈바꿈을 꾀하는 중이다.

사실 일본의 몰염치한 역사 퇴행적 인식, 식민제국주의 만행에 대한 과거사 부정 행태는 이미 오래전부터 슈미트의 이론을 좇아온 측면이 많다. 20세기 중반까지 히틀러에게 제공됐던 정치현안에 대한 해답도 21세기 일본에 의해 슬프면서도 분노를 자아내는 몰역사적 행태로 되살아나고 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책임과 관련해 “우리는 전범이 아니다”고 항변하는 것은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전범 책임이 없다”는 슈미트의 논리와 같다. 연장선상에서 반성은커녕 전쟁배상 책임도 부정한다. 슈미트는 1차 대전 뒤 유럽 국가들의 독일 배상책임론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돈을 물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를 제공한 바 있다. 공교롭게 30일 일제의 강요로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일하다 임금도 받지 못한 채 귀국한 5명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이 부산고등법원(민사5부)에서 내려지지만 전쟁배상과 관련해 일본에는 쇠귀에 경 읽기다.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이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 바뀌었던 수법을 배우면 어떤가”라는 아소 부총리의 주장은 이제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실제 당시 독일과 현 일본의 정치구조는 묘하게 오버랩된다. 1933년 히틀러는 총선에서 나치 의석이 과반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연정을 구성해 바이마르 헌법을 무력화하는 ‘수권법’을 통과시켰다. 현재 일본 자민당과 연립정당이 21일 참의원선거 승리에도 불구, 여전히 개헌정족수에 달하지 않는 상황과 비슷하다. 또 당시 히틀러 장기독재의 최대 기반이 바로 일시적 경제회복이었다는 점에서 아베 총리의 ‘무제한 양적완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아베노믹스’와도 꽤 닮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상협 기자 jupite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