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일러스트=안은진 기자 eun0322@

광주에 사는 박모(62) 씨는 자기 소유의 아파트(1억4800만 원)에 살며, 아반떼(1600㏄)를 끈다. 상가를 하나 가지고 있어 매년 501만 원 정도의 임대소득도 얻는다. 박 씨는 이런 소득과 재산에 따라 매월 16만 원의 건강보험료를 낸다.

같은 동네에 사는 김모(63) 씨는 박 씨보다 더 큰 아파트(3억 원)에 살고, 더 비싼 자가용(그랜저 3000㏄)을 몬다. 은퇴 전 교직에 몸담았던 김 씨는 한 해 연금소득이 3682만 원에 달한다. 하지만 김 씨는 박 씨와 달리, 건보료를 내지 않는다.

둘 사이에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일까. 이유는 단 하나, 박 씨의 아들은 자영업자(지역가입자)고 김 씨의 아들은 회사원(직장가입자)이기 때문이다. 현행 건보 부과체계에서 직장가입자는 피부양자 제도가 인정되지만, 지역가입자는 인정되지 않는다.

김 씨는 직장인 아들을 둔 덕에 피부양자로 등재돼 돈 한 푼 안내면서 건보 혜택을 받고, 박 씨는 자영업자 아들을 둔 죄로 은퇴 후에도 꼬박꼬박 건보료를 내고 있다. 만약 박 씨도 직장인 아들을 뒀다면, 매월 16만 원을 낼 일은 없었을 것이다.

◆건강보험 무임승차 피부양자, 전국 2016만 명 =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제도는 현행 건보 부과체계의 가장 큰 허점으로 지적된다. 직장·지역가입자 간 형평성 문제는 물론, 수많은 건보 무임승차자를 양산해 건보 재정까지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올해 1월 기준으로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된 사람은 무려 2016만4000명에 달한다. 전체 건보 수혜자 4968만7000명의 40.5%로, 국민 10명 중 4명은 건보 재정에 아무런 기여 없이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직장가입자 안에서 보면 피부양자의 규모는 더 거대하다. 3413만7000명의 전체 직장가입자 가운데 돈을 내는 가입자는 1397만3000명(40.9%)뿐이다. 나머지 60% 가까이는 이들에게 얹혀 사는 꼴이다. 1명의 직장가입자가 1.44명의 부양자를 먹여 살린다.

반면 지역가입자는 피부양자 제도가 없다. 자영업자 혹은 농·어민인 A 씨의 부모는 소득이 없더라도 재산에 건보료가 책정돼 부과된다. 재산마저 없다면 기본 3450원의 건보료를 내 자기 몫을 해야 한다. A 씨의 자녀들도 각각 성·연령에 따라 기존 건보료가 추가 합산된다. 이렇듯 지역가입자의 세대원이 돼 건보료가 매겨지는 노인과 자녀가 601만7000명에 이른다. 지역가입자가 아니었다면 모두 피부양자로 인정돼 경제적 부담을 짊어지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다.

◆느슨한 피부양자 기준, 형제·자매도 허용 = 건보 피부양자 제도는 경제적 능력이 없는 노인과 자녀를, 소득이 있는 직장인이 부양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따라서 경제적 부담 능력을 갖게 된다면 피부양자에서 제외돼 건보료를 내는 것이 맞다. 하지만 현행 피부양자 제외 기준은 너무도 느슨해 이를 잘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 소득 규정의 경우 피부양자 가운데 ▲사업 소득 보유자 ▲금융소득 4000만 원 초과자 ▲종합소득 500만 원 초과자일 경우에만 피부양자 자격이 없어진다. 연금소득이나 기타 근로소득이 4000만 원 이상인 사람들의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하는 법률 개정안은 해당 피부양자들의 거센 반대에 세 차례나 연기된 끝에 오는 8월에야 시행된다. 재산 규정은 더 느슨해 재산이 9억 원을 초과하지만 않으면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이마저도 원래 없던 규정을 2011년에야 만든 것이다. 한편 느슨한 피부양자 기준의 백미는 직장가입자의 형제·자매까지도 피부양자로 인정된다는 점이다. 재산이 3억 원을 넘지 않으면 된다.

◆피부양자 안에서도 들쭉날쭉 = 직장가입자 내에서도 피부양자 제도에 대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느슨한 기준에 걸려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당한 이들의 원성이 잦다. 건보 피부양자 제도는 직장·지역가입자 사이의 형평성 문제뿐만 아니라, 직장가입자 사이에서도 또 다른 형평성 문제를 낳고 있다. 경기 수원에 사는 박모(61) 씨는 직장인 딸이 있지만, 본인 금융소득을 4001만 원 가지고 있어 피부양자에서 제외됐다. 문제는 이때부터다. 지역가입자로 전환된 박 씨는 소득 이외 재산(33평형 아파트·2억8000만 원)과 자가용(소나타 2000㏄)에도 건보료가 부과돼 매월 32만7430원이라는 건보료 폭탄을 맞았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김모(61) 씨는 박 씨보다 1만 원 적은 4000만 원의 금융소득을 얻는다. 소득 이외 재산은 32평 아파트(3억8000만 원)와 자가용(그랜저 2500㏄)으로 박 씨보다 많은 수준이다. 하지만 김 씨는 건보료를 단 한 푼도 안 낸다. 피부양자 제외 기준인 4000만 원을 기준으로 둘의 운명은 이처럼 달라진다. 이런 ‘all or nothing’식 건보료 책정은 기타 근로소득 4000만 원, 재산 9억 원 등 다른 제외 기준도 마찬가지로 이뤄진다.

이기효 인제대 보건대학장은 “왜 직장가입자에게만 피부양자 제도가 있는가, 왜 하필 금융소득 4000만 원이 피부양자 제외 기준인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합리적이지 않은 피부양자 제도를 없애고, 소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원칙적으로 건보료를 부담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