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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숙명여대 교수·법학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자유권이다. 누구든지 국가권력의 제한을 받지않고 특정한 장소에 모일 수 있으며, 단체를 결성할 수 있고, 단체에 가입하거나 탈퇴할 수 있다. 또한 근로자는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 즉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가지고 있다. 단결권은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가입할 권리, 단체교섭권은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사용자와 집단적으로 협상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리, 단체행동권은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사용자의 정상적인 업무 운영을 저해하여 파업을 할 수 있는 권리다.

이와 같이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일지라도 폭력을 수반한 불법적인 권리 행사까지 용납될 수는 없다. 권리의 행사는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을 갖춰야 하며, 어떠한 목적도 결코 불법 수단까지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을 지키기 위해 불법을 저지른다는 ‘아름다운 목적’, 추악한 수단은 법질서 자체를 무력화할 뿐이다.

지난 주말 현대차 울산공장에서의 죽봉(竹棒)시위는 2009년에 있었던 화물연대의 죽창시위를 연상시켜 우리 사회 시위문화의 암울한 퇴보라고 할 수 있다. 물리적 충돌과 50여 명의 부상자 발생 등 불법·폭력시위의 재현이며, 단체교섭에서의 제3자 개입 문제까지 야기하고 있다. 수도승이 참선할 때 정신을 깨우기 위해 사용하는 죽비도 아니고 죽봉이란 말도 낯설거니와 하물며 죽창은 그 이미지가 최악이다. 역사상 죽창이 사용된 사건들, 예컨대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이 죽창과 쇠꼬챙이로 조선인을 학살한 사건이나 죽창과 총으로 양민을 학살했던 제주 4·3사건 등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선진국 수준의 법체계를 갖추고 법치(法治)국가임을 강조하면서도 한편 쇠파이프와 죽봉, 이에 맞서는 물대포와 자욱한 소화기 방사 시위 현장을 보면, 그동안 어렵사리 이뤘던 평화시위 문화를 한순간에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다. 경찰은 죽창이라 하고 검찰은 죽봉이라는 표현을 쓰니 죽봉인지 죽창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쇠파이프보다 가벼운 대나무라 할지라도 사용하기에 따라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결과를 예견할 수 있기 때문에 죽봉을 휘두른 시위는 불법·폭력 시위임이 확실하다.

노사 협상 과정에서의 사용자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2004년 노동부가 현대차의 울산·아산·전주 공장 127개 사내하청업체에 근로자 파견은 분명히 불법이라고 판정했고, 2010년 대법원도 불법파견을 인정하여 고등법원에 파기환송함으로써 서울고등법원이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원고승소 판결을 했으며, 2012년 대법원의 종국판결도 결국 현대차 사내하청근로자는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와 사내하청노조는 올해 1750명, 그리고 2016년까지 3500명을 정규직화하는 방안을 놓고 ‘특별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사내하청노조가 6800명 전원 정규직화와 비정규직 사용금지 등을 계속 주장해 협상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 물론 근로자도 유리할 때는 법의 보호를, 불리할 땐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는 태도는 권리 행사와 의무 이행이 양면적(兩面的) 관계임을 망각한 것으로 더 이상의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한다.

원칙 없는 사용자, 법을 지키지 않는 근로자, 그들의 불법행위를 방관하고 이른바 ‘방관자 효과’라고 하는 제노비스 신드롬(Genovese syndrome)을 기대하는 정부도 모두 문제다. 노사 문제가 격해지면 고용노동부 등이 자율적 해결에 수수방관하지 말고 조정자 역할을 성실하고 공정하게 수행해야 한다. 사회의 안전과 질서를 확립하는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