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9일 서울 마포구 염리동 국민건강보험공단 본부 민원 콜센터에서 상담원들이 밀려오는 민원 전화를 응대하고 있다. 상담원들은 하루 120건 정도의 민원을 처리한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서울에 사는 최모(52·자영업) 씨는 최근 건강보험료가 1만 원가량 많아진 것을 알게 됐다. 사업 수입도 그대로고, 재산 상황도 달라진 것이 없어 건보료가 오를 이유는 없었다. 의문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민원센터와의 전화에서 풀렸다. 건보공단은 최 씨의 아들이 올해 20세가 돼 건보료가 올랐다고 말했다. 현행 건보 부과체계에서 직장가입자는 자녀에 대해 건보료가 책정되지 않지만, 지역가입자(연간 소득 500만 원 이하)는 자녀 수와 그 연령에 따라 건보료가 매겨진다. 자녀 1명에 대한 건보료가 3450원 정도인데, 20세가 되면 그 값이 9450원으로 2.8배 오른다. 최 씨는 “딸이었으면 7590원 정도 올라갈 게, 아들이어서 9450원으로 올랐다는 설명을 듣고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며 “지금도 이런 불합리한 제도가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소규모 식료품점을 연 박모(31·서울) 씨는 월세가 올라 건보료를 더 낸 경우다. 그는 전세를 치를 돈도 없어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인 원룸에 산다. 그런데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에서는 월세 30만 원을 비용으로 보지 않고 재산으로 간주한다. 건보공단은 월세 30만 원을 1200만 원의 재산으로 환산, 박 씨가 총 6200만 원(인정액 1770만 원)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며 1만6750원의 건보료를 매겼다. 게다가 몇 달 전 집주인이 월세를 35만 원으로 올려 박 씨의 재산 환산액은 6400만 원(인정액 1830만 원)으로 올라가 건보료도 4310원이 따라 올랐다. 박 씨는 “월세는 월세대로 올려주고 건보료까지 더 내야 하는 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지역가입자 김모(50·경남 창원) 씨는 자동차 때문에 건보료가 올랐다. 친척들이 결혼도 못한 채 마땅한 직업 없이 지내던 김 씨를 생각해, 학생들을 통학시키며 밥벌이를 하라고 2004년식 봉고차 1대를 구입해줬다. 그러자 월 1만1240원이었던 김 씨의 건보료가 2만5720원으로 2배 넘게 껑충 뛰었다.

◆ 담당직원도 어려운 보험료 산정 = 건보 직장가입자의 보험료가 오르는 경우는 한 가지, 월급이 올랐을 때다. 근로소득이 늘어난 만큼 건보료가 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고, 수긍도 빠르다. 하지만 지역가입자는 소득 이외에 토지, 주택, 건축물 등 재산, 자동차에 대해 건보료가 매겨진다. 주택은 소유하지 않아도 임차주택에 대한 보증금과 전·월세가 포함되고, 선박, 항공기 소유에 대한 부과 규정도 있다. 연간 소득이 500만 원 이하일 때는 생활수준 및 경제활동 참가율을 보게 돼, 가입자의 성별과 배우자, 자녀 수, 이들의 연령까지 고려된다.

이처럼 다양한 변수로 인해 건보료가 오르기 때문에 가입자는 그 세부내용을 알기 어렵다. 지역가입자의 건보 부과체계 방식은 너무 복잡해 건보공단 담당 직원조차 이해하기 힘들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그만큼 건보료 수용도가 떨어지고, 직장가입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수십 개 등급, 인력 낭비 형평성 논란도 = 지역가입자 부과체계 세부 규정을 보면 난해함은 더 커진다. 소득 75개 등급, 재산 50개 등급, 자동차 7개 등급 28구간, 생활수준 및 경제활동 참가율 30개 등급 등 총 162개 등급이 있다. 자동차의 경우 승용차, 화물차, 특수차로 나누고 여기에 배기량과 사용연수까지 나눠야 한다. 가입자의 정보를 알아내 각각의 등급으로 나누고, 이에 해당하는 점수들을 합산한 뒤 점수별 금액 172.7원(2013년 기준)을 곱하는 계산을 하는 것 자체가 일이다. 이렇듯 절차가 복잡하니 보험료를 산정하고, 관련 민원을 해결하는 데 많은 행정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비효율이 발생한다.

게다가 등급 구분은 구간이 바뀔 때만 건보료가 급격히 뛰는 문제도 발생한다. 가령 소득 13등급인 1700만∼1800만 원일 때 구간 안에서는 모두 보험료가 같지만, 1800만 원을 1원만 넘어도 등급이 바뀌어 건보료가 5000원 오른다. 이런 계단식 상승은 소득 수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지역가입자, 73%가 재산 등에 부과 = 재산·자녀 등에 건보료를 책정하는 부과방식은 복잡할 뿐만 아니라 부담능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인천에 사는 김모(60·지역가입자) 씨는 소득이 없다. 가진 재산은 3539만 원과 2004년식 카렌스 1대가 전부다. 하지만 여기에 건보료 11만 원이 책정된다. 이렇듯 소득 없이 재산만 가진 지역가입자 가구가 올해 1월 기준으로 121만 가구다. 소득뿐 아니라 재산도 전혀 없는 가구도 290만 가구에 달하지만 이들 또한 보험료를 피할 수는 없다. 배우자와 자녀, 자동차에 건보료가 산정된다. 이 411만 가구는 사실상 보험료 부담능력이 고려되지 않은 채 건보료가 부과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지역가입자에게서 총 7조2378만 원의 건보료를 걷었는데, 소득에 대한 것은 26.8%밖에 안 됐다. 나머지 73.2%는 재산·자동차·자녀에 대한 건보료다. 김진현(간호학) 서울대 교수는 “지역가입자의 경우 생활 수준에 맞지 않게 건보료가 부과되다 보니 보험료를 낼 돈이 없어 체납을 하는 사례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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