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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숙명여대 교수·법학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들은 매일매일 각 분야의 많은 전문가가 쏟아내는 주장과 조언과 예측(豫測)을 접할 수 있다. 종합편성 채널이 도입되고 언론 매체가 많아진 이후로는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예측을 듣기가 더욱 더 쉬워졌다. 전문가란 특정 분야를 깊이 연구하거나 그 일에 오랫동안 종사해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소유한 사람들이라고 간주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말을 믿고 존중하게 된다.

그러나 나중에 그들의 예측이 완전히 빗나간 경우, 주장이 허구였음이 밝혀진 경우 그 말을 믿은 사람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됐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손해를 끼친 사실이 밝혀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전문가의 예측을 믿은 사람들은 잘못 믿은 자기 탓을 하며 속수무책인 데 비해 전문가들은 예측이 틀린 데 대한 설명이나 사과는커녕 예측의 어려움을 빌미로 자신을 합리화하거나 더 자주 언론 매체에 등장하기도 한다.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발생 당시 원전의 방사능 누출 사고도 예측 오류 탓이라고 하고, 중국발(發) 원자재대란도 경제 전문가들이 예측을 잘못한 탓이라고 하고, 미국에서도 경제학자들 간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데 대한 상호 비판과 조롱이 오가는 것을 보면 전문가의 예측 오류는 어디에나 있는 일 같다.

경제 전문가의 경제 사정에 대한 설명과 예측, 선거 전문가의 선거 결과 예측, 정치 평론가들의 세평(世評), 기상 전문가의 일기 예보, 증시 전문가의 예측과 조언, 부동산 전문가의 부동산시장 전망 등이 극명하게 틀린 경우가 부지기수다. 물론 인간이기 때문에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고 미래 예측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신뢰한다. 세상만사가 시간에 따라 변하고 달라지기 때문에 예측은 곧 경쟁력이고 필수불가결하다.

어쨌든 미래 예측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특정 분야의 전문가 예측에 대해 비전문가들이 기대하고 신뢰하는 수준이 높아지는 법인데, 이런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오류를 양산하는 전문가들에 대해서는 방관만 하고 믿은 사람만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지 답답하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프리드먼은 ‘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라는 책에서 전문가들이 함정에 빠지는 패턴을 여섯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편견과 부패, 비합리적인 사고, 청중(독자)에 대한 고려, 능력부족, 감독의 부재, 자동적인 대응 등이다. 최근에 예측이 빗나갔던 전문가들의 행태를 이에 비춰보면 참으로 탁월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대학연구소가 정부기관의 연구용역을 수행할 때 용역 발주기관의 눈치를 본다. 부동산 전문가가 부동산시장에 대한 전망을 할 경우에도 관변 연구소든, 민간 연구소든 연구비 지급기관의 눈치를 보면서 부동산시장이 침체되면 낙관적 전망을 하고, 과열되면 낙관도 비관도 아닌 낙관에 조금 못 미치는 전망을 한다고 한다. 판단의 기준이 연구비를 받는 연구자의 정치·경제적 동기에 의해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구비를 지급하는 기관 또는 연구 용역을 의뢰하는 기관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마치 갑을관계에서 갑이 돼 연구 결과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려는 횡포를 보이는 예가 많다. 개인 연구자도 자신의 전문 지식에 의해 시야가 좁아지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편견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로 대우받는 사람들, 전문가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혹시 이 여섯 항목 중 어디에 해당하지는 않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요즘에야 비로소 전문가의 오류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는 것 같다. 건설 분야에서 설계자가 타당성 용역조사를 할 때 수요 예측을 잘못하면 손해배상토록 하는 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찜통 더위에 겪는 전력난도 산업통상자원부의 전력 수요예측 실무소위원회의 예측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예측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이 돈이나 명예, 처신에 눈이 멀지 않고 양심을 지키고 연구 윤리에 충실해야 하는 자세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리와 부조리 척결의 차원에서 이제는 전문가의 엉터리 예측에도 엄중한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