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7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사회적기업 ‘리드릭’ 작업실에서 롯데홈쇼핑 관계자들이 이 회사를 위한 광고방송 제작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심만수 기자 panfocus@munhwa.com

징검다리 휴일이 낀 지난 7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사회적기업 리드릭의 한 작업실. 이 작업실에는 10여 명의 중증장애인이 콘센트 조립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직원이 징검다리 휴일이어서 쉬지만 이들은 혼자서는 야외활동을 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기 때문에 휴일이지만 출근해 일을 하고 있다”며 “이들이 야외로 나갈 때는 회사가 차량을 지원하는 등 야외 나들이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장애인들을 주로 고용하는 독특한 사회적기업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RIDRIK·Research Institute of the Differently Abled Person Right in Korea)이다. 이 회사는 영문 이름의 약자를 모아 리드릭이라고 부른다. 주 업종은 친환경 복사용지 생산과 광고기획, 디자인, 인쇄 등이고 부수적으로 콘센트를 조립 생산하고 있다.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업장은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리드릭은 장애인 중심 사업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리드릭이 특별한 이유는 직원 대부분을 중증장애인으로 채용한 점이다. 리드릭은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 재활법 시행령 4조의 중증장애인 기준에 맞는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다. 더 힘든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현재 리드릭에는 총 75명의 직원 중 지적장애인(뇌성마비 포함)과 지체장애인 등 장애인이 67%인 50명이나 일하고 있다.

리드릭은 장애인 차별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에서 시작했다. 시민운동이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기업으로 발전한 것이다. 1987년 12월 설립된 리드릭은 국내에서 가장 열심히 장애인 인권운동을 펼친 단체 중 하나다. 1989년 장애인 복지법 개정,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 1999년 장애인직업법 제정, 2003년 장애인차별 금지법 제정 등 장애인 관련 법·제도 개선에도 크게 기여했다. 리드릭이 전국에 10개 지소를 두고 장애인 인식개선 운동 등 장애인의 인권 찾기에 힘썼다.

이 같은 장애인 운동을 하던 리드릭은 지난 2006년 인쇄사업에 뛰어들었다. 장애인 시민운동에서 장애인 고용사업으로 확장에 나선 것이다. 취업이 어려운 장애인과 취업취약계층이 함께 모여 장애인 인쇄조합을 만들겠다는 계획에서 시작됐다. 사회적기업인 리드릭은 장애인을 기반으로 시장에서 다른 업체들과 경쟁에 나선 것이다. 리드릭은 인쇄설비를 갖춘 뒤 인쇄 사업을 통해 장애인의 사회적응 훈련과 직업기술 훈련을 시행하면서 지속적으로 일자리와 일거리를 만들어 내겠다는 생각에서 이 같은 경쟁에 뛰어든 것이다. 이 회사는 5년 전인 2008년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리드릭의 사업은 크게 인쇄와 복사용지 판매로 나뉜다. 디자인 등 컴퓨터 작업에는 비교적 몸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신체 장애가 있는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컴퓨터작업 등 복잡한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지적장애인들은 용지 재단, 수량 파악, 박스 포장, 운반 등 복사용지 판매에 종사하며 인쇄 부문에서도 내지정렬 및 추림 작업, 붙임 작업, 크기별 재단, 검수, 포장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복사용지는 대기업 제품을 가져다가 재단 후 포장해 판매한다. 다른 제품과 품질 차이도 없다. 하지만 자동화를 하지 않아 사람의 손을 더 거치다보니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공공기관들이 ‘장애인 생산품 우선구매제도’를 통해 구입하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회사는 자동화를 계획하지 않고 있다. 자동화를 하면 더 많은 복사용지를 납품할 수 있지만 장애인 고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로부터 중증장애인 생산품 시설로 지정받아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제도의 혜택을 입고 있다. 현재 400여 곳에 전단 책자 카탈로그 등을 납품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자산관리공사로부터 서류를 스캔하는 업무를 위탁받아 장애인 6명을 추가로 고용하기도 했다.

리드릭의 2012년 매출액은 61억 원. 중소기업 수준이지만 장애인들이 많아 경쟁력도 떨어진다. 하지만 이 같은 리드릭의 ‘장애인 고용 확대’라는 방침에 많은 기업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이 회사에 대한 광고방송을 하기로 하고 광고제작을 진행 중이다. 1000여 만 원을 들여 이 회사에 대한 광고 영상을 만들어 홈쇼핑 방송에서 무료로 틀어준다. 제작된 광고 영상은 이 회사의 홍보자료로 활용된다. 박경자 리드릭 총무팀장은 “장애인 고용 확대를 위해 설립된 리드릭을 위해 롯데홈쇼핑 등 많은 기업과 공공기관이 도움을 주고 있다”며 “‘술통을 보고 술을 판단하지 않고 책 표지를 보고 책에 대해 비평하지 않듯이 편견을 깨고 보면 제품을 위해 더 많은 땀을 쏟는 장애인들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장애인 중심의 사회적기업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여 달라”고 당부했다.

신선종 기자 hanuli@munhwa.com